거룩한 손길

한희철의 얘기마을(200)


거룩한 손길


                           김대섭 작/벼말리기


한동안 신작로엔 벼들이 기다랗다 널렸다. 낫으로 베어 탈곡기로 털던 옛날과는 달리 요즘엔 콤바인 기계로 추수를 하다 보니 벼를 말리는 일이 또한 큰 일이 되었다. 


벼를 베어 한동안 논에 두었다가 나중에 벼가 마른 후 타작한 옛날에 비해 기계가 좋아진 요즘에는 아예 벼를 베는 순간 탈곡은 물론 가마에까지 담겨 나오니, 천생 말리는 일이 나중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벼를 말리는 장소로는 신작로 이상이 없다. 검은 아스팔트인 신작로는 이따금씩 차들이 다녀 위험하긴 하지만 벼를 가장 빨리 말릴 수 있다. 아침에 널고 저녁에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하다.


고무래로 쓱쓱 펼치면 되는 아침에 비해 거둬들이는 저녁 손길은 더디기도 하고 고되기도 하다. 한군데로 벼를 모아 퍽퍽 퍼 담는 일은 그나마 쉬운 일, 그리고 남은 바닥의 낱알들이 힘들다. 나중에 가선 한 알 한 알 주워야 한다. 갈수록 해가 짧아져 그때가 되면 대개는 어둘 녘인데, 남아있는 낱알 한 개 한 개를 어둠 속 주워 담아야 한다.


까짓 볏가마니 한 가마에 몇 만원, 그것 생각하면 바닥에 남는 낱알들은 돈도 아닌데, 그래도 그게 아니지, 먹거리를 그렇게 다루면 천벌 받지, 마지막 한 톨까지 주워 담는다.


그 한 톨 건지기 위해 그동안 흘린 땀이 얼만데, 이 땅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하늘이 주신 양식인데, 어둠 속 마지막 한 톨까지 벼를 담는 손길 손길들, 그처럼 거룩한 손길이 또 있을까 싶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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