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201)
어떤 두려움
조용한 시간, 은근히 나를 불안하게 하는 한 생각이 있습니다. 번번이 그런 생각은 그런 때 떠올라서 마음을 쉽지 않게 만듭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엄배덤배(엄벙덤벙의 원주 사투리) 사는 삶, 혹 어느 날 뜻밖의 은총으로 철이 들어 삶이 뭔지,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그나마 희미하게 알게 되었는데, 철든 삶을 살아갈 시간이 모자란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옛 말처럼, 겨우 겨우 철이 들었는데 남아 있는 시간이 없다면, 그게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싶습니다.
뒤늦은 깨달음, 분명 그것은 안타까움을 넘어선 한스러움이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 뒤로 미루는 삶의 무감각한 어리석음이, 문득 뒤에서 되짚어 보는 헤아림 하나에 쉽게 잡히고 맙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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