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219)
가래질
신작로 건너편 산다락 논. 병철 씨가 일하는 곳에 다녀왔다. 소를 끌고 쟁기를 메워 가래질을 하는 일이었다.
층층이 붙어 있는 고만고만한 논들, 작고 외지다고 놀리지 않고 그 땅을 일구는 손길이 새삼 귀하다.
“이렷, 이렷”
다부지게 소를 몰며 논둑을 간다. 석석 논둑이 쟁깃날에 갈라진다. 멀쩡한 둑을 반이나 잘라낸다. 저러다 둑이 무너지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가래질을 해야 한 해 동안 논둑이 견딘다. 잘라낸 둑 부분을 물에 이긴 진흙으로 발라두어야 물이 새지 않고 둑이 터지지 않는 것이다.
물로 반죽한 물컹물컹한 진흙, 허술하고 약하지 싶은 진흙들이 오히려 물을 견뎌 둑을 둑 되게 하는 것이 신기하다.
단단하고 견고한 것보다는 한없이 약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물을 막는 가래질. 우리 삶을 지키는 것 또한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라면 우리 마음에도 가래질이 필요하지, 단단하고 굳은 마음 반쯤은 버리고 부드럽고 약한 마음 덧입혀야지, 돌아서 내려오는 길, 가래질이 두고두고 귀했다.
-<얘기마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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