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가래질

by 한종호 2021. 2. 1.

한희철의 얘기마을(219)


가래질



신작로 건너편 산다락 논. 병철 씨가 일하는 곳에 다녀왔다. 소를 끌고 쟁기를 메워 가래질을 하는 일이었다.


층층이 붙어 있는 고만고만한 논들, 작고 외지다고 놀리지 않고 그 땅을 일구는 손길이 새삼 귀하다.


“이렷, 이렷”


다부지게 소를 몰며 논둑을 간다. 석석 논둑이 쟁깃날에 갈라진다. 멀쩡한 둑을 반이나 잘라낸다. 저러다 둑이 무너지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가래질을 해야 한 해 동안 논둑이 견딘다. 잘라낸 둑 부분을 물에 이긴 진흙으로 발라두어야 물이 새지 않고 둑이 터지지 않는 것이다.


물로 반죽한 물컹물컹한 진흙, 허술하고 약하지 싶은 진흙들이 오히려 물을 견뎌 둑을 둑 되게 하는 것이 신기하다. 


단단하고 견고한 것보다는 한없이 약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물을 막는 가래질. 우리 삶을 지키는 것 또한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라면 우리 마음에도 가래질이 필요하지, 단단하고 굳은 마음 반쯤은 버리고 부드럽고 약한 마음 덧입혀야지, 돌아서 내려오는 길, 가래질이 두고두고 귀했다. 


-<얘기마을> (1993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하루  (0) 2021.02.03
일하는 아이들  (0) 2021.02.02
아이스러움!  (0) 2021.01.31
농사꾼 생일  (0) 2021.01.30
자기 몸집만큼만  (0) 2021.01.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