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통신공사 측에서 보낸 공문이 왔다. 공중전화 관리자에게 보낸 공문이었다. 시간을 내어 회사로 나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공중전화 사용료가 한 달에 5만원은 넘어야 되는데 그렇질 못하니 관리자를 만나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단강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전화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전화가 없는 집이 많았다. 전화를 쓰려면 천상 남의 전화를 빌려 써야 하는데 시간에 상관없이 과하게 무는 요금도 요금이려니와, 전화 빌려 쓰는 마음의 부담이 여간이 아니었다.
전화가 있는 집은 있는 집대로 부담이었다. 수입이 가을철에 몰려있는 농촌으로선 매달 물어야 되는 전화요금이 적잖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공중전화 설치를 신청했고, 봉사한다 생각하며 관리자를 자청했다.
사용액수가 매달 5만원에 넘어야 ‘견딜 수’ 있는 전화인데 매달 나오는 액수란 게 만원에서 삼만 원대, 기준치에는 늘 미달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동안 대부분의 집들이 전화를 놓기도 했고, 공중전화를 이용해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도 많이 희박해졌다. 돈값이 흔해진 건지, 돈에 대한 자세가 흐릿해진 건지 모르지만 웬만한 건 그냥 집에서 걸고 만다.
사용액수가 적은 이유와 개선방안, 앞으로도 별 진전이 없을 땐 전화를 철수하겠고, 그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보는 각서가 어이없게도 공중전화 관리자로서의 각서였다.
조서 쓰듯 각서 쓰고 나오는 왠지 모를 꺼림칙한 마음.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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