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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by 한종호 2021. 2. 8.



수없이 돌아섭니다.
부름 받은 땅
이 땅에 발 붙여 살면서도
마음은 수없이 돌아섭니다.

 


떠날 갈 이 모두 떠난
텅 빈 땅
껍질 같은 땅에 주름진 삶이
상흔처럼 남았습니다.


숯 같은 가슴에서 떨어지는 눈물
받을 길 없고
퍼렇게 멍든 얘기
피할 길 없을 때
수없이 돌아섭니다.


말뚝처럼 불쌍한 몸뚱일 남기고서
마음은 수없이 돌아섭니다.

하면서도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당신 때문입니다.


갈 테면 가라는
질책도 원망도 아닌
그저
나직한 음성
당신 때문입니다.


텅 빈 땅에
홀로 남는
당신의 긴 그림자 때문입니다.


아니
당신의 맑은 얼굴 때문입니다.


이 땅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얘기마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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