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 안 속장님 네를 들어서다 보니 문 한쪽 편으로 빈 철망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전에 다람쥐를 키우던 철망인데 다람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철망 안엔 난로연통에 쓰이는 ‘ㄱ’자 모양의 주름진 연통과 보온 덮개로 쓰는 재생천 쪼가리들만 널려 있었습니다. 먹을 걸 넣어주던 조그만 통 안에는 잘 까진 호박씨들이 한 움큼 잘 담겨 있었습니다.
안 속장님께 다람쥐에 대해 물었더니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모이를 주려고 문을 여는 순간 밖으로 뛰쳐나와 도망을 쳤고 한 마리만 남았는데, 남은 한 마리가 날이 추워지자 연통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춥지 말라고 바닥에 깔아준 재생천을 조금씩 쏠아서 연통 속에 꾸역꾸역 쑤셔 넣더니 그 안에 틀어박혀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한 마리마저 보이질 않아 혹시나 하고 연통을 뒤져보니 그 안에 다람쥐가 들어 있었는데, 그 속에는 잘 까진 호박씨가 한 움큼 들어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먹으라고 조금씩 넣어준 호박씨를 다람쥐는 먹지 않고 한 알 두 알 연통 속으로 물어다가 겨울 날 양식으로 모아 두었던 것입니다.
겨울을 나는 다람쥐의 자세가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다가올 추위를 예감하고 다람쥐는 그리도 열심히, 그리고 빈틈없이 준비했던 것인데, 그런 다람쥐에 비해 대책 없이 살아가는 우리 네 삶이 왠지 초라하고 빈약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때때로 닥쳐오는 생의 추위를 예감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하는 우리네 삶이 말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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