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손을 녹이는 것은 언 손이구나

<꽃자리> 출간 책 서평 2021. 3. 14. 08:20

 

 

 

글을 읽으며 자주 마주해야 했던 사별자라는 말은 내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뜻이야 이내 헤아릴 수 있었지만 뭔가 체온이 빠져나간 듯한 어감과, 나도 모르게 그 말로부터 거리를 두려하는 마음이 그랬습니다. ‘사별자와 대조가 되는 비사별자란 말도 그랬고, ‘비사별자잠정적인 사별자라는 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해와 공감은 되면서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원고를 다 읽은 뒤에야 항복하듯 서너 가지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이별 중에서 가장 아픈 이별이 사별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그 일로 겪어야 하는 아픔은 근원적인 아픔이라는 것 등입니다. 분명 처음 해보는 생각은 아닌데도,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던 얼음장 아래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금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북미원주민들은 그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일러줍니다. 목회의 길을 걸어오며 적지 않은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은 교우들이나 교우 가족들과의 헤어짐이어서 집례를 맡게 되었고, 집례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인 슬픔을 위로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자주 떠올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 했던 모리 교수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헤어진다 해도 소중한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 말하고는 했지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말도 종종 떠올렸습니다. 모든 만남 뒤엔 헤어짐이 따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어서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있으니 소망을 갖자며 위로를 구하고는 했습니다.

 

너무 서둘러 떠났다 싶은 죽음 앞에서는 조선시대 시인 박은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자고 약속한 그의 아내가 스물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시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슬픔을 두고 인명기능구, 이갈여우잠’(人命豈能久, 亦碣如牛暫)이라 노래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란 게 어찌 오래 가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처럼 쉬 마를 테지라는 뜻입니다. 소 발자국에 잠깐 고였다가 이내 마르고 마는 물의 이미지는 아침 안개와 같고 풀의 꽃과 같다는 말씀보다도 인생의 덧없음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천붕이나 참척이란 말을 떠올릴 때도 있었습니다. ‘천붕’(天崩)은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를 말하고, ‘참혹할 참근심할 척을 쓰는 참척’(慘慽)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창자가 끊어진다는 단장지애(斷腸之哀)의 고통은 참척이 아닐까 짐작하고는 했습니다.

 

많은 장례식에 참여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이들의 슬픔과 아픔과 허전함을 위로하며 지내왔다 싶었던 내게 나는 사별하였다에 실린 글들은 묵중하고도 날카로운 통증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내가 슬픔을 당한 이의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했구나, 그들이 겪고 있는 슬픔과 아픔과 허전함의 일부만을 헤아렸구나, 쉽게 가닿을 수 없는 아픔을 두고 상당 부분 교리에 기댔구나 싶었습니다.

 

속 깊이 울어야 하는 마음의 몸살을, 하나님께 독기 든 언어로 대드는, 창자까지 꼬이는, 더듬이를 잃어버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개미의 심정을, 슬픔에 절망하는 나와 그런 나를 망연히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를, 하루씩만 살아가기로 겨우 다짐하는 이의 심정을, 지붕이 사라진 추운 집에 외투도 걸치지 못한 채 머무는 시린 느낌을,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는 수많은 불면의 밤을, 자신도 모르게 겪어야 하는 대인기피증과 혼자서는 어떤 결정도 할 수가 없는 안쓰러운 결정장애를, 익숙했던 일이 갈수록 서툴러지는 퇴화현상을, 버리면서 지우기와 품으면서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때마다 확인해야 하는 허전함과 당혹감을, 여행이나 일이나 쇼핑이나 신앙생활에 몰두하는 것으로는 다 메울 수 없는 근원적인 공허함을, 시간이 지나가도 결코 옅어지거나 가벼워지지 않는, 그런 슬픔과 아픔과 허전함을 나는 다 모르고 있었구나, 충분히 짐작하지 못했구나, 그동안 이만하면 됐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깊은 자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김남조 시인의 <사랑초서>를 좋아했습니다. 사랑에 관한 가장 깊고 맑은 절창이다 싶었지요. 세월이 지나가면서도 아직 다 끝나지 않은 메아리처럼 마음에 남은 대목들이 적지가 않습니다.

 

 

부싯돌을 그어 불을 붙인 듯 나는 사별하였다를 읽으며 문득 떠오른 사랑초서의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네 영혼을 부르면/ 나도 대답해/ 름 끼치며 처음 아는/ 영혼의 동맹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먼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어느 날 만나, 처음 세상이 열리듯 마음의 문을 열어 서로를 모시고, 내가 너인 듯 그대가 나인 듯 하나 되어 걸어온 길,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훌쩍 곁을 떠나는 것은 나의 절반이 아니라 나의 전부가, 나의 반쪽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원하지도 않았고 준비되지도 않은 순간 영혼의 동맹이 깨어진다는 것은 내 영혼이 흔적조차 찾지 못할 만큼 사라지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가까이 지내는 원로장로님 내외분과 차를 마시는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인 장로님은 사진을 찍고 아내인 권사님은 시를 씁니다. 서너 해 전부터 두 분은 달력을 만듭니다. 남편의 사진과 아내의 시가 어울린 달력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달력으로, 두 사람의 어울림 자체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합니다.

 

여든이 넘어 늘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두 분께 막 읽기를 마친 나는 사별하였다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중에는 이 세상을 떠나는 죽음 자체도 있겠거니와 함께 살아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권사님이 갑자기 두 눈을 손으로 감쌌습니다. 그런 모습은 한참을 이어졌습니다. 권사님은 울고 있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일,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죄송하다고 하자 어렵게 눈물을 닦은 권사님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요즘 권사님에겐 드는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내가 먼저 떠나면 저 사람은 어떻게 될까, 밥도 못하고 빨래도 못 하는 사람이 집에 들어서다가 대문 비밀번호도 잊어버린 채 문 앞에 오래 서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찾아들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듣게 된 사별자’ ‘비사별자’ ‘잠정적인 사별자라는 말이 권사님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꽃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는 꽃의 빛깔이나 모양 혹은 향기가 아니라 꽃이 시들기 때문, 꽃이 시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피어있는 그 순간을 사랑하는 것, 다른 욕심 없이 다만 함께 있는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그게 최선의 걸음일 거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젖는 두 눈을 닦으며, 어떤 때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글을 다 읽고는 불씨처럼 마음에 담아둔 생각이 있습니다. 사별의 아픔을 경험한 이들이 한결같이 들려주는 경험담이 있었습니다. 광야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혼자가 되고 나니 가까운 이들의 마땅한 관심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들의 무관심도 모두가 부담과 원망으로 다가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드문 위로가 되었던 것은 따로 있었는데, 같은 일을 경험한 이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같은 아픔을 경험한 이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송두리째 삶의 뿌리가 뽑힌 듯한 상처와 허전함을 어루만져 주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언 손을 녹여줄 수 있는 것은 그 손을 단번에 녹여주는 뜨거운 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차가움을 단번에 녹여주는 뜨거운 손은 분명 고맙겠지만, 까닭모를 아픔이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언 손을 녹여줄 수 있는 손은, 그 손을 오래도록 잡아주는 언 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우 중 얼마 전에 남편을 떠나보내신 권사님이 있습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터인지 권사님은 담담하게 장례를 마쳤습니다. 그랬던 권사님이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단 오 분만이라도 남편과 함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고, 남들이 그런 말 할 땐 그 심정 전혀 몰랐는데 이제는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고 말이지요. 다음에 권사님을 만나면 권사님의 손을 오래 잡아드리려고 합니다. 내 손이 충분히 따뜻하지 못해도 그럴수록 오래 마주잡아야지 싶습니다.

 

누군가의 언 손을 마주잡기 위해 큰 용기를 가지고 내밀한 아픔을 털어놓고 있는 언 손들을, 부디 하늘이 가없는 사랑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기를 빕니다.

 

한희철/정릉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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