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순서대로 읽되 한 시편 안에서 마음에 닿는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차례와 관계없이 공동번역과 개역개정, 오경웅의『성영역의』(《시편사색》으로 번역출간)를 중심으로 더 입에 붙는 구절을 중심으로 한땀한땀 닿으려 합니다.
시편 1편 5절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죄인들은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공동번역》)
天心所不容 群賢所棄絶〔천심소불용 군현소기절〕
하느님 싫어하시는 것을
믿음의 사람들은 버리고 멀리하네(《시편사색》, 우징숑)
신앙이란 여러 모양으로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것을 곰곰히 살피면서 이걸 내가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내 삶의 일부로 삼을 것인가를 묻는 연습입니다. 이 연습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로 이끌어줍니다. 삶에서 받아들일 것과 멀리할 것을 결정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시기에 여쭙고 기다리는 중에 그분과도 가까워집니다.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깨어있는 연습을 통해 그분과 점점 친밀해지고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시인은 이 여정을 통해 훈련된 신실한 이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보여줍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하느님 싫어하시는 바를 버리고 끊어냅니다.
그 간격을 분별하지 못하면 사욕(私慾)이 끼어들고 신앙은 엉클어지거나 자기합리화를 하기 마련입니다. 사무엘의 질책에 아랫사람 핑계로 얼버무리려는 사울 왕처럼 되고 말지요(사무엘상 15장). 시간이 좀더 흐르면 자기합리화는 ‘나만 그런가? 다들 그러지 않던가?’ 하며 도리어 하느님께 성을 내면서 왜 내게만 그러시냐고 따져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택하는 순간순간에 하느님께서 친히 개입하시고 때로는 어리석은 인생을 위해서 강권적으로라도 일러주시길 구할 일입니다. 내 바람과는 좀 달라서 그 순간은 섭섭하고 아쉽고 원망스러울지라도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늘 알 수 있지 않던가요? 그분이 늘 옳으셨음을 말입니다.
그러니 빈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에 그분의 뜻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가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과 움켜쥐고 싶은 것들을 손꼽으며 하느님을 설득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그분 앞에 선 내 마음에 혹여 무슨 의도가 있는지 볼 일입니다.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fzari.tistory.com/2510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fzari.tistory.com/2512
*한 말씀만 하소서!fzari.tistory.com/2516?category=974810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fzari.tistory.com/2519?category=974810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fzari.tistory.com/2522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fzari.tistory.com/2532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fzari.tistory.com/2535
*저의 적들을 쳐주소서!fzari.tistory.com/2540?category=974810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fzari.tistory.com/2544
*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fzari.tistory.com/2563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fzari.tistory.com/2568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https://fzari.tistory.com/2580?category=974810
*경외의 마음 담아,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https://fzari.tistory.com/2588?category=974810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https://fzari.tistory.com/2591
---------------------------------------------------------
*우징숑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송대선의 시편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0) | 2021.04.20 |
---|---|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 (0) | 2021.04.14 |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0) | 2021.04.12 |
한 말씀만 하소서! (0) | 2021.04.09 |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0) | 2021.04.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