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사택으로 이사를 했다. 미비한 점도 있었고, 아직 채 벽도 마르지 않았지만 곧 다가올 봉헌예배 행사를 위해 시간을 앞당겼다. 이번에도 동네 모든 분들이 수고를 하였다.
17평, 내 의견이 반영된 집이라 그런지 참 편안하다. 흩어져 있던 살림살이가 이제야 한군데로 모였다. 두 달여 허름한 담배건조실, 조그마한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형편없이 뒹굴며 주인의 무관심을 원망했을 몇 가지 짐들이 한군데로 모인 것이다. 그간 서너 번의 이사로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책을 쥐가 쏠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수도를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단칸방, 조그마한 마루에 부엌살림을 늘어놓고 찬바람 그대로 맞으며 식사를 마련했던 아내 보기가 영 미안했는데, 이제 그 짐 하나는 던 셈이다.
방이 두 개나 되고, 마루와 주방에도 보일러가 깔려 있으니 이제 손님이 와도 잠자리가 넉넉해 든든하다. 지난번 같이 한방에 껴 잤던 진원이와 형주가 다시 오면 방 하나씩 내줘야지.
제법 깊이가 깊은 화장실도 새삼스레 신기하다. 흙 위에 일을 보고 막대기로 쳐내야 했던, 누군 그게 골프의 원조라 하지만, 지난 시간들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언젠가 들른 아내의 친구는 돌 두 개가 달랑 놓여 있는 화장실에서 고개를 갸우뚱 하고 나와 “여기 아닌데?” 했다던데, 이젠 그런 혼란 없어도 될 거고. 비가 오면 처마 밑 비닐을 치고 신발을 마루 위로 올려놓아야 하는 불편도 없어졌다.
작지만 편한 서재도 기대가 된다. 올해엔 좀 더 책상에 앉아봐야지. 놓았던 펜도 다시 들도록 하고.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이런 편리함에 기대 쉽게 정체되고 마는 건 아닌지, 방안에 스스로 갇혀 삶의 현장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든다. 조심해야지.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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