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적 관조의 삶

<꽃자리> 출간 책 서평 2021. 6. 12. 07:35

 

존경하는 페친 최창남 목사님이 내신 책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꽃자리)를 단숨에 읽었다. 술술 잘 읽힌다. 아포리즘처럼 읽히고 수필처럼 읽히고, 또 거친 역사의 시간을 헤쳐온 한 인간의 자성적 고백처럼도 읽힌다.

최 목사님은 군부독재, 졸속근대화 시기의 거친 세월을 노동운동, 빈민운동, 문화운동과 같은 운동권에서 살아오시면서 많은 고난과 상처를 온 몸으로 겪어내셨다. 그러다가 연세 70이 가까운 시점에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집을 만들어 그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은자처럼 사신다. 많은 시간 주변의 자연물을 관조하고 지난 삶을 성찰하면서, 또 떠돌이 고양이들 친구 삼아 밥 주면서 세상만사에 초연한 듯, 자족적으로 안돈하며 사신다.

 

 

이 책의 글들은 어찌 보면 고대 스토아 사상가들이 추구한 '초연한 무관심'(adiaphora)의 자세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자세의 태반이 우주적 이성의 조화가 아니라 자연만물의 여여한 이치에 깃들어 있는 점이 좀 다르다. 또 스토아 사상가들이 발명하여 바울 사도도 참조한 '자족'(autarkeia)의 가치를 내면화한 글들이 상당히 많지만 이들과 달리 최 목사님은 특별한 목표를 향해 달음박질하는 외곬의 지향점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바람과 풀과 같이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삶, 여유와 여백의 강조, 늙어가고 죽어가는 뭇 생명과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극진하고도 성의어린 배려의 태도, 시시비비를 초월한 원융적 화엄의 경지에 잇닿은 달관의 자세, 노자가 설파한 공과 허, 적요와 고독의 미덕 등을 부드러운 성찰과 권유의 말들로 풀어내며 그 견고한 지향의 자리를 대신한다.

 

간간이 80년대 경험한 투쟁적 변혁 운동의 상처와 회한이 묻어나는 글들에서는 실패의 기억들이 무성한데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늘날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품고 더 잘 사랑하는 자양분으로 승화시키는 담백한 마음이 퍽 인상적이다. 역시 고상한 명분은 위험하고 강인한 용기와 도전, 투쟁의 열정은 그 앞길에 함정이 많다. 이제 70세에 근접하여 최 목사님은 그 함정을 피해가는 묘법을 체득한 듯 보이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무슨 거창한 지혜로 강변하지도 않는다.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데, 이런 것, 저런 것 두루 감싸면서 넘어가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최 목사님이 살아내신 거친 삶의 이력에 대한 동정적 혜안이 없이 이 책을 읽으면 그 달관의 언어들과 관조적 삶의 태도가 상처의 후유증을 달래는 일종의 보호기제나 이 세상사를 통달한 것처럼 보이는 턱없는 '겉멋'의 허영처럼 오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의 대안적 가치를 몸으로 깨치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실행하고자 외로운 섬의 깊은 산속에 은자로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삶이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글과 삶의 거리는 항상 아득한 것이지만 그 간격을 조율하고 줄여나가고자 애쓰는 일을 이 땅에 말깨나 하고 운동깨나 하는 사람들이 최 목사님만큼만 할 수 있다면 이 나라, 이 땅은 머잖아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로 변모할 것이다.

 

*췌언: 이 책에서 비교를 나타내는 격조사 "~보다"는 그 앞의 명사나 대명사에 붙여 쓰는 것이 맞는데 대부분 띄어서 썼다. 이런 군더더기 지적을 하는 것은, 첫째, 이 책이 많이 팔려 2쇄, 3쇄 낼 때 그 편집 오류를 교정하여 책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였으면 하는 기대가 있어서이고, 둘째, 글 쓰는 것을 전문업으로 삼아 몇 권의 책까지 내신 정** 작가를 비롯해 유명한 작가들 중에도 이곳 페북 글에 이 "~보다"를 늘 띄어 쓰는 오류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기에 고쳤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차정식/한일장신대 교수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