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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열 감지기가 울렸다

by 한종호 2021. 7. 16.

 



열 감지기가 울렸다
가게 문 입구에서 37.4도

순간 나는 발열자가 된다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았던 것이 원인임을 스스로 감지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집 안에서는 선풍기를 돌리고
창문을 조금 열어둔다

차 안에서는 뒤에 창문 두 개를 다 열고
보조석 창문을 반쯤 열고
운전석 창문은 이마까지만 내린다

비록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맺히더래도
여름인데 몸에서 땀이 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나는 가족들 사이에선 꼰대가 되기도 하고
밖에선 발열자가 되어서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인도 델리의 재래 시장인 빠하르간즈
5월로 접어들던 무렵의 무더위를 몸이 기억한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선 
숨조차 쉴 수 없었던 무더움

그곳의 초여름 더위는 무더움을 넘어선 무서움이었다
무더위로 인해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던 생명들

나 한 사람이 에어컨을 틀 때마다
지구의 체온이 티끌 만큼 올라간다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입구에서 잠시 땀을 식히신 후 들어오시라는 
사람의 말소리가 한 줄기 바람처럼 들려온다

혼자 가게 입구에 서 있으면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지만 속마음은 이렇게 반응을 한다

여름에 땀이 나고 체온이 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왜들 호들갑인지

내 몸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며
여름엔 풀잎들도 땀이 맺혀 꽃망울을 틔우는데

땀이 맺힌 이마를 스치며 지나는 한 줄기 바람의 손길을
하늘을 울리며 곧 쏟아질 것 같은 비의 속 깊은 울음을

이렇게 살아 있는 지구를 온몸으로 느끼며
비와 함께 울다가 해와 함께 맑게 갠 하늘의 둥근 무지개를 바라보며 감사와 기도의 두 손을 모으리라

마당에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듯
한낮에 내 얼굴도 빨갛게 익었다가

저녁이면 돌담 위에 박꽃처럼 하얗게 피어
밤하늘에서 달과 별을 찾다 보면 

무더위도 함께 지낼만 하다며
이마를 스치는 바람의 손길이 가슴속까지 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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