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작실에 올라갔다.
설정순 성도님네가 잎담배를 심는 날이었다.
해질녘 돌아오는 길에 일을 마친 이속장님네 소를 데리고 왔다.
낯선 이가 줄을 잡았는데도 터벅터벅 소는 여전히 제 걸음이다.
종일 된 일을 했음에도 싫은 표정이 없다.
그렇게 한 평생 일을 하고서도 죽은 다음 몸뚱이마저 고기로 남기는 착한 동물.
‘살아생전 머리에 달린 뿔은 언제, 어디에 쓰는 걸까?’
커다란 소의 눈이 유난히 착하고 맑게 보인다.
알아들을 리 없지만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소에게 말을 건넨다.
‘소야, 난 네가 좋단다.’
소는 여전히 눈을 껌벅거릴 뿐이었지만.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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