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 누워 계셨고, 머리맡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두 분은 마을에서 뚝 떨어진 외진 산중에서 산을 지키며 외롭게 살고 있었다.
촛농이 쌓이고, 시커멓게 그을린 등잔불,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곳에서 두 분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이란 지금처럼 어둑하고 침침한 것이리라.
날짜와 요일을 몰라 예배드리러 내려오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을 땐, 부끄러움과 안쓰러움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깊숙한 주름마다에 패인 두 분 삶의 고독이란 얼마만한 것일지 모르겠다. 마당에 나와 소죽거리 만드는 작두질을 도와 드렸다.
‘써걱, 써걱’
할아버지가 들이미는 짚단이 내리 밟는 작두에 잘려 나간다.
문득 스치는 생각들이 있다. 한 독립군이 일본군에 의해 작두에 목이 잘려 죽던 얼마 전 신문의 사진이 떠올랐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사람의 목을 작둣날 아래 넣고 발을 밟는 그 마음은 얼마나 독한 것일까.
밥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소마저 쌀을 먹고 살아야 한다면 어찌됐을까. 소는 볏단과 콩깍지를 먹는다. 그게 새삼스럽고 신기하고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장작을 패 드리려고 도끼질을 하는데, 빗맞을 뿐 잘 안 된다. 팔순의 할아버지는 자로 잰 듯 똑바로 패 놓았는데도.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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