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를 두고 분명 거룩한 땅이라 이름 부를 것입니다.’
끝내 목이 멨다. 창립예배를 드리며 인사말을 하는데 가슴이 떨렸고 빈말은 삼가고 싶었다. 먼 길을 달려와 마당 한가운데 둘러선 사람들. 무엇보다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실명한 창식이 와준 게 고마웠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려오던 목회의 첫발. 오늘은 1987년 3월25일 수요일, 눈바람 불고 무지 추움.
이정송 감리사님과 유상국 목사님의 뒤를 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단강교회’라 쓰인 현판을 작은 사랑방 모퉁이에 힘차게 못질을 한다.
‘이제 시작이다.’ 안쓰러운 표정을 남기고 모두들 돌아갔지만 외롭진 않았다. 삶의 터전은 다르지만 우린 모두 하나님 품속에서 사는 거니까. 난 또 이곳에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야 하니까.
한 흐름의 앞쪽에 선다는 건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잘 견디며 깨어 있어야지. 흔들릴수록 방향감각 잃지 않으며.
-목회수첩은 가능한 계속 쓰도록 하겠다. 어쩜 난 쉽게 실어증(失語症)을 앓게 되겠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계속 기록해 보련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은 아니다. 짧은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기록함이 내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향한 내 가장 큰 애정임엔 분명하니까.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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