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진 씽크대 주방 집기들이
아파트 베란다로 다 나왔다
물속에서도 물기를 머금을 줄 모르던 집기들이
모처럼 누워서 축 늘어져 해바라기를 한다
어떻게 햇살을 담뿍 머금었는지
눈이 부시도록 빛을 내뿜는 걸 아름답게 바라보면서도
해바라기 씨앗처럼 까만 점이 생길까
샛노란 꽃잎처럼 피부가 탈까
쓸데없는 걱정부터 앞서는 나는 아직 멀었다
살면서 해바라기 한 번 실컷 못하고서
그늘진 눈가에 실주름만 진다
해를 등에 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해바라기처럼
8월의 햇살에 익어가며 씨앗에게 자릴 내어주는 꽃잎과
밭고랑을 닮은 굵은 주름살 앞에 늘 부끄러운 마음의 골마다 주름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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