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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두런두런'

하나님의 유머

by 한종호 2015. 1. 6.

한희철의 두런두런(22)

하나님의 유머

강원도 단강에서 시작된 나의 첫 목회는 하나님의 유머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을 크게 웃기려거든 너의 계획을 이야기하라고 했던. 

원주 근교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친구를 찾아간 것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성경공부를 하던 이들과 함께 청량리에서 저녁 기차를 타고 만종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다음날 동네 주민들에게 전도를 하고 돌아오는 12일의 일정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기다릴 때 너도 목회를 시작해야 하지 않니?” 친구는 내게 물었고, “기회가 주어지면 해야지.” 쉽게 대답을 했는데, 결국은 그 대답이 나를 단강으로 이끈 셈이었다.

단강으로 향하기 전 나는 나를 아프게 돌아보아야 했다. 처음부터 단강에서 목회를 시작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가 나에게 추천한 교회는 신학 후배가 목회하고 있던, 부론면에 있는 다른 교회였다. 군목으로 떠나게 된 후배의 후임으로 나를 추천한 것이었다.

강원도로 목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고향교회 장로님이 듣고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무 외진 곳으로 간다며, 수원 외곽에 개척교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주선하겠노라 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추천한 곳에 다른 이를 소개하면 좋겠노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 한 사람이 더 목회를 할 기회를 갖게 되지 않겠냐 했지만, 사실 마음으로는 수원 쪽에서 목회를 시작하는 것이 더 좋게 여겨졌다. 강원도 구석진 곳으로 가는 것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좋게 여겨졌고, 그러면 서울에서 인도하고 있는 성경공부도 계속 이어갈 수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내 생각과 달랐다. 이미 나를 추천하였기에 내가 오지 않으면 자기도 신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친구는 가까운 곳에서 함께 목회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향교회 장로님의 제안을 송구함으로 물렸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내려가겠노라 연락을 했다. 맡고 있던 몇 가지 일들도 정리를 했다.

 

꿈에도 그리던 첫 목회를 드디어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강원도로 내려가기로 한 며칠 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기로 한 교회에 다른 교역자가 이미 이삿짐을 풀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맥이 탁 풀렸다. 강원도행을 위해 포기했던 일들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런 생각 끝 마음을 찔러오는 것이 있었는데, 나는 나를 아프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시골교회로 가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생각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나는 아직도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조차 섬길 자격이 없는 것이구나, 마음이 참 아팠다.

어지럽고 힘든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무조건 길을 떠나 어디라도 떠돌아다닐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구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단강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예배당이 없는 마을이라고 했다. 거기에서 시작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아프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친구의 이야기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작정 길을 나서기로 한 아침, 결정을 바꾸었다. 점점 또렷해지는 생각이 있었다. 단강은 꼭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친구는 내게 평생 미안한 마음을 가질 터인데, 그것은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단강은 외면해선 안 될 곳이었다. 무조건 가겠다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서둘러 날을 정해 원주로 내려갔다. 단강마을을 보고 싶었다. 어떤 마을인지를 알아야 어떤 목회를 할지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단강이 어디쯤 있는지, 어떻게 가는 것인지, 어떤 모습인지를 보고 싶었다. 교제를 시작하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지금의 아내와 함께 원주행 시외버스를 탔다.

우리는 그 날 단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친구가 반대를 했는데, 단강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네 대 밖에 없다고 했다. 단강에 들어가면 버스가 끊겨 돌아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또한 나중에 알았지만, 단강의 모습을 보면 어느 누구도 단강에 내려오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기에 아예 단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결국은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단강에 첫 발을 디뎠다. 애지중지 사랑으로 곱게 키운 딸을 시골교회 전도사의 아내로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런데 딸을 데리고 살 사위는 첫 목회지로 가는 길조차 알지를 못하니 얼마나 혼란스러우셨을까? 창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단강으로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못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원주, 문막, 후용, 노림, 부론, 정산, 단강. 지금이야 손금처럼 훤하지만 당시로서는 처음 듣는 지명을 받아 적어 마을 이름을 약도처럼 전해드렸다. 그 때의 어색함과 송구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단강에서의 목회는 시작이 되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땅으로 하나님은 나를 거칠게 이끄셨다. 그야말로 땅 끝’, 단강에서 보낸 15년의 시간은 내내 아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혹시 아릿한이라는 표현이 맞는가 싶어 사전을 찾으니, ‘조금 아린 느낌이 들다고 풀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자면 조금이 아니라 많이아리다. 단강의 시간은 퇴색한 흑백사진처럼 여겨지다가도 막상 떠올리면 울컥 뜨거움으로 되살아난다.

아무 준비 없이 찾아간 단강에서 한 일 중에는 단강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는 것이 있었다. 탄광촌에서 목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고흐가 목회 대신 그림을 택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껍질처럼 남은 그 작고 외진 마을에서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는 막막함을 나는 그렇게 견디어냈다.

그 때 적은 글들이 그동안 몇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했고, <낮은 울타리>에 연재되기도 했다. 몇 안 되는 교우들과 마을 분들과 나눠보던 소식지를 나중에는 칠백 명 정도 나눠보게도 되었다.

지렁이 글씨로 쓴 글을 아내가 옮겨 적었다. 오랫동안 단강에서 쓴 글을 읽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읽을라치면 또다시 마음이 아프고 미어지곤 했다. 오랫동안 구석진 곳에 처박아두었을 뿐이었다.

문득 그 글을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빛깔로,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오래 전 흘러간 물을 되돌리려는 어리석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 때 적은 글은 그 땅에 살 때 의미를 가질 뿐, 그곳을 떠나 이만큼 세월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옛 기억에 마음을 기대려는 약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저함으로 옛 글을 꺼내드는 것은 그 때의 글 안에는 여전히 땀과 눈물이 남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땅 끝에 그래도 발붙여 서려던 안간힘이 담겨 있다. 시절과 상황은 다르지만 여전히 땅 끝에 서야 하는 것은 우리의 숙제 아닐까 싶다.

지금도 여전히 그리운 단강,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의 고향으로 남은 그 때 그 시절을 통해 끝내 외면할 수 없는 땅 끝에 어떻게 서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발끝을 살피고 싶다. 여전히 나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유머 앞에 내 삶을 맡기면서.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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