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
마지못해 구한 은총
옛날에 믿음이 매우 깊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도 그를 보고 몹시 기뻐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거룩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이 거룩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대하되 그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았고, 사람의 겉모습에 머물지 않고 그의 깊은 곳을 살폈으며, 누구를 만나든 그를 용서했고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그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에게 보내셨다. 무엇이든 청하기만 하면 당신에게 주어질 것이다. 치유의 능력을 받고 싶은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하느님께서 친히 치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죄인들을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고 싶은가?”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저의 일이 아닙니다. 그건 천사들의 일입니다.”
“덕행의 모범이 되어 사람들이 본받고 싶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관심의 중심이 될 테니까요.”
“그러면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하느님의 은총을요. 은총만 있다면 저는 제가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안 된다. 어떤 기적을 원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한 가지를 억지로라도 떠맡겨야겠다.”
“정 그러시다면 이걸 청하겠습니다. 저를 통해서 좋은 일들이 이루어지되, 제 자신이 알아차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 거룩한 사람의 그림자가 그의 뒤에 생길 때마다 그곳이 치유의 땅이 되도록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자가 생기는 곳마다 그가 그 그림자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조건으로 병자들이 치유되고, 땅이 기름지게 되고, 샘들이 다시 솟고, 삶에 지친 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감돌게 되었습니다.
류연복 판화
사람들은 성인을 통해 수많은 은총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성인은 그것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는 잊힌 채 자기를 통해서 좋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성인의 소원은 충분히 성취가 되었습니다.
마지못해 구하였던 마지막 은총, 자신을 통해 좋은 일들이 이루어지되 저 자신이 알아차리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더없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 그윽한 경지에 우리는 언제쯤 어떻게 이를 수 있는 것일 지요? 있을 곳에 말없이 있어 모든 것이 넉넉해지는 복된 삶, 그 은총어린 삶을 꿈꿔봅니다.
어느 날의 기도
감나무 까치밥을 참새가 먹습니다
주님
하늘 양식으로 우릴 먹이십시오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동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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