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21)

살고 싶다 누이여

 

창립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수원에서 원주행 새벽 버스를 탔다. 3월 25일, 봄이라면 봄일 수 있지만 차창엔 성에가 번져 있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 것도 짐작할 수 없는 길, 성에에 가려 보이지 않는 세상과 닮았다 싶었다. 창밖 풍경 보려고 입김을 불어 창을 닦을 때 문득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황동규의 시 한 구절이었다. ‘熱河日記’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다 누이여, 하나의 피해자로라도.”

왜 그랬을까, 낡은 레코드판이 같은 자리에서 튀듯 같은 생각이 이어졌다.

단강행

원주에서 이정송 감리사님을 만나 감리사님 차를 타고 단강으로 들어간다. 예배당이 없던 한 마을에서 창립예배를 드리는 날, 목회의 첫 걸음을 내딛는 전도사가 처음으로 그 마을 찾아간다. 그럴수록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고마웠다. 어쩌면 그는 나보다도 더 막막할 것이다. 그런데도 함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문막까지는 그런대로 지명이 낯익었다.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마을 풍경도, 이따금씩 나타나는 마을 이름도. 산 하나 넘어 동네가 나오면 단강에 여긴가 싶었고, 들판을 지나 동네가 나타나면 단강이 이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그래도 차는 서지 않았고 마침내 감리사님 차가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마음으로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어디든 좋습니다, 멈춰만 주십시오. 그런 생각 끝에 나타난 동네가 단강이었다.

 

 

첫 예배

단강의 첫 모습은 낯설었다기보다는 예기치 못한 충격이었다. 충분히 짐작했다 싶었는데도, 아직 우리나라에 이런 동네가 남아있었구나, 그렇게 다가왔다.

나중에 들었지만 아내는 단강의 첫 인상을 ‘6.25 전쟁 영화를 찍는 세트장’ 같았다고 했다. 어디가 길인지 외양간인지가 구별되지 않았고, 곳곳에 서 있는 흙벽돌로 쌓아올린 잎담배 건조실이 오히려 이국적인 풍광으로 다가왔다.

예배당으로 쓰기로 한, 오랫동안 잎담배를 널어 말리던 백수네 사랑방을 두고 마당에 둘러 서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모인 사람들이 많진 않았지만 두어 평 되는 방안에는 다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를 두고 분명 거룩한 땅이라 부를 것입니다.”

순서지에도 나와 있지 않은 담임자 인사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가슴은 떨렸고, 빈 말을 삼가고 싶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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