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엔 우물이 있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깊이가 제법 깊은 우물이었다.
우리는 우물 속에 얼굴을 비춰보기도 했고, ‘와!’ 소리를 질러 메아리로 돌아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두레박에 물을 채운 뒤 누가 손을 적게 쓰고 물을 끌어올리나 시합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쌀이며 나물을 가져 나와 씻었고, 간단한 빨래도 했다.
우물은 좋은 냉장고도 되어 오이나 토마토를 우물 속에 집어넣기도 했다. 그런 뒤 꺼내 먹으면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둥둥 떠 있는 오이와 토마토를 두레박에 담는 데는 나름대로의 기술이 필요했다.
한여름에는 윗옷을 벗고 등물하기도 좋았다. 이따금씩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우물물을 푸기도 했다.
커다란 통에 줄을 매달아 물을 푸고, 거의 바닥이 들어날 쯤이면 한 사람이 통을 잡고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때 온 동네 사람들은 줄을 잡아 당겨 천천히 내려가도록 해야 했다. 우물 바닥에는 잘못 빠뜨린 숟가락과 그릇 등이 제법 있었고, 그걸 모두 건져내고서야 들어갔던 사람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 하룻밤만 자면 또 물이 괴어오르곤 했다.
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곳, 어머니들의 일상과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었던 곳, 함께 같은 물을 마신다는 친숙하고도 강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곳. 우물은 마을의 중심이었다. 샘을 찾아 마른 목 축이는 산짐승처럼 마을 우물은 마을사람들을 메마르지 않도록 지켜 주었다.
지금은 사라진 마을의 우물, 우물과 함께 사라진 만남과 이야기와 정겨움. 다시 한 번 우물 속 얼굴을 비출 순 없는 건지, ‘와!’ 소리 질러 되돌아오는 그 소리를 들을 순 없는 것인지.
사라진 우물, 사라진 샘에 대한 이 큰 아쉬움이라니!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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