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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

by 한종호 2021. 11. 12.

 



1원이면 주먹만 한 눈깔사탕이 두 개였다. 박하향 진한 하얀 사탕을 입이 불거지도록 입안에 넣으면 행복했다. 그러나 그 1원짜리 구리 동전 한 개가 아쉬웠다.


학교로 가는 길목엔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번 발길질에 솔 씨들은 춤을 추며 제법 날렸다. 점 찍힌 듯 박혀있는 까만 솔 씨들을 잘도 빼먹었다. 노란가루로 날리기 전, 한참 물오른 송화도 마찬가지였다. 쉽지 않은 그 맛을 즐겼다. 


찔레순도 흔했고, 제법 높다란 학교 옆 벼랑을 따라서는 산딸기도 탐스럽게 매달리곤 했다. 초봄 잔설이 남아있는 산에 올라선 마른 칡 순을 찾아 칡뿌리를 캤다. 이 사이에 씹히는, 동글게 느껴지는 알칡의 맛을 입이 시커멓도록 맛보았다.


집 뒤뜰 언덕배기엔 돼지감자가 있었다. 가죽 벗겨내듯 언 땅을 들어내면 올망졸망한 돼지감자들이 나왔다. 돼지감자 사이론 하얀 뿌리도 있었다. 우린 그걸 마라 불렀다. 생긴 모양은 꼭 지렁이를 닮았지만 시원한 맛은 돼지감자와 다름없었다.


옥수수 대도 빼놓을 수가 없다. 오줌 같이 찝찔한 놈도 있었지만 게 중에는 꽤 단 놈들도 있어 나름대로의 식별력을 요했다. 


사실 옥수수 대는 어디나 흔했다. 껍질을 벗기는 건 대개 이로 했는데 잘못하면 와삭 입술이 베이곤 했다.


가을 철 배추 밑동은 얼마나 크기도 하고 그 맛도 좋았던지. 통이 클 대로 큰 조선배추들이 남새밭엔 나란히 줄지어 있었고, 가을 김장철이 되면 배추 밑동들은 인기가 좋았다. 땅속에 파묻었다가 한 겨울 꺼내먹는 것은 별미였다. 


가을산의 온갖 열매와 버섯들, 개울과 저수지의 온갖 물고기들과 우렁과 조개들, 황금벌판의 메뚜기도 놓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탕 두 개 살 수 있는 1원이 늘 아쉬웠던 어린 시절, 그러나 먹을거리는 많았다. 조금만 눈여겨 주위를 돌아보면, 그렇게 자연과 친숙하기만 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내주었다.


흔한 돈으로 이가 썩도록 사탕과 과자를 즐기는 요즘 아이들에겐 전혀 낯설고 원시적인 이야기겠지만 그랬다, 자연은 우리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주었다. 풍요로움과 함께 사라진,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이 큰 그리움이라니.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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