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시절. 그때 우리에게 지급된 간식은 빵이었다. 그 또한 원조 식량이었는데, 겉이 우툴두툴하고 딱딱한 곰보빵이었다. 속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그저 밀가루를 구워 만든 빵이지만, 그건 훌륭한 간식이었다.
3학년 우리의 교실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관사라 불리던 일본식 집 한 채와 그 옆에 붙은 큰 차고가 언덕배기 예배당 아래쪽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창고를 개조한 것이 우리 반 교실이었다. 6.25때 맞았다는 총탄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반만 떨어져 있다는 오붓함에 불편함을 몰랐다.
간식 빵은 언제나 점심시간에 운반해 오곤 했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학교로 넘어가 양동이 가득 빵을 담아 우리 교실로 오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몇몇 형들이 빵 몇 개를 달라고 시비를 결어 왔다.
급식 빵이라 안 된다고 하자 그러면 혼날 줄 알라고 겁을 주었다. 안 좋은 형들이란 걸 뻔히 알았지만 반장으로서 반 친구들 빵을 그들에게 내줄 순 없는 일이었다. 그날 오후,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던 나는 되게 몰매를 맞았다. ‘뽄때’를 톡톡히 당한 셈이었다.
책임을 진다는 건 때로 희생을 감수하는 일이다. 희생을 감수해야만 지켜 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몇 개 빵을 지키느라 몰매를 맞았던 어릴 적 기억은 지금도 내 가슴 한구석에 남아 책임 있게 사는 삶 되기 위해선 희생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여전히 가르치고 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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