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많이 신었던 신은 고무신이었다. 고무신도 두 종류였는데, 그중 많이 신었던 건 검정고무신이었다. 시커멓게 생긴 건 영 볼품이 없었지만 질기긴 엄청 질겼다. 쉽게 닳거나 찢어지지 않아 한번 사면 싫도록 신어야 했다.
땀이 나면 잘 벗겨져 뜀박질을 할 땐 벗어 손에 들고 뛰기야 했고, 잘못 차면 공보다도 더 높이 솟아오르기도 했던 고무신, 고무신은 수륙양용이었다. 사실 고무신은 땅보다도 물에서 더 편했다. 젖는 걸 걱정할 필요 없이 언제라도 물에 들어갈 수 있었고, 때론 잡은 고기를 담아두는 그릇 용도로도 쓸 수 있었다.
싫도록 신었던 고무신. 검정 고무신을 신을 때에는 흰 고무신이 부러웠다. 하얀 빛깔은 얼마나 깨끗했으며 그에 비해 검정 고무신은 얼마나 누추해 보였는지.
때가 지나 흰 고무신을 신었을 땐 운동화가 부러웠다. 가지런한 신발 끈이 여간 멋스럽게 보이질 않았다. 검정 고무신으로부터 시작된 신에 대한 부러움, 그러나 지금은 더 나은 신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에 넘치는 신을 부끄러워한다.
돌아보면 검정고무신을 신었을 그때가 어느 때보다 건강한 때였다. 흰 고무신에 대한 부러움을 뒤늦게 기억 속에서 건져낸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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