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인 상호형네서 라디오를 만들었단 얘길 듣곤 구경하러 갔었다. 별난 모양의 진공관들이 늘어서 있는, 집에서 꾸민 라디오였다. 거기서 소리가 나는 게 신기했다. 진공관 속 어디엔가 난장이만한 이들이 숨어 노래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린 내게 늘어선 진공관들은 그만한 사람들을 숨기고도 남을 것처럼 보였다.
동네에 처음으로 텔레비전이 놓인 집은 가게집이었다. 물건을 살 때마다 표를 나누어 주어 그 표 몇 장을 가져오는 아이들이게만 텔레비전을 보여줬다.
표를 구한 아이들은 신이나 으스대며 가게로 들어갔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괜스레 가게를 맴돌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재미난 소리에 화가 오르면 안테나가 매달린 쇠기둥을 획 돌려놓곤 내빼곤 했다.
그럴수록 이야기가 있는 할머니 무릎이, 선생님의 자상함이 더욱 그리웠다. 소리가 이야기가 그리웠던 시절이었다. 먹을거리도 넉넉지 않았지만 그만큼이나 이야기가 아쉽기도 했다.
라디오, 칼라 텔레비전은 물론 오디오에 비디오 간단한 장치 하나에 온갖 오락이 펼쳐지는 게임기 등 너무나 달라진 세상. 어릴 적 모자랐기에 목말랐던 이야기를 요즘은 풍요로움 때문에 느끼지 못한다.
원하는 기계 앞에 앉으면 그뿐, 누구도 이야기가 없어 목말라하지 않는다. 옆집 라디오를 신기하게 구경했던 텔레비전 있는 가게를 부러움으로 바라봤던 어릴 적 기억은 지금껏 남아 그래도 그 가난함이 소중하지 않냐며 다시 한 번 이야기에 대한 목마름을 부추기곤 한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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