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코바나19금'('썩은 밥에 빠진 누런 코')

by 한종호 2021. 12. 28.

 




한 사람이 있다. 그 옛날 친구를 따라서 뭣 모르고 찾아간 해인사의 백련암. 그리고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던 젊은이다. 그러면 부처님 앞에 삼 천 배를 올리라는 성철 스님의 한 마디에 괜히 투덜댔다가 "그라믄 니는 마, 만 배 해라!"라는 성철 스님의 엄호에 오기가 발동해서 정말로 백련암 초행길에 만 배를 올렸던 젊은이다. 그가 바로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이다. 

다리가 끊어지고 온몸이 부숴지는 듯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만 배를 겨우 마친 젊은이는 기어가다시피하며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였다고 한다. 청년이 기대했던 한 말씀이란 다름 아닌 청년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한 말씀이었으리라. 

성철 스님은 "지킬 수 있나?" 물으신 후 딱 한 말씀만 하시곤 내려가라 하셨다며 상좌인 원택 스님은 회상에 젖은 얼굴빛으로 평생의 은사이신 성철 스님과의 첫 일화를 들려주신다. "속이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젊은이는 앞날의 인생을 위한 특별한 한 말씀을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겨우 "거짓말 하지 마라."라는 성철 스님의 그 평범한 한 말씀에 갑자기 허탈해진 젊은이는 기껏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그 쉬운 말을 들으려고 이렇게 고생하며 만 배를 올렸던가. 후회를 하면서 그만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곰곰이 일주일이 흘렀다.

"거짓말 하지 마라.", "속이지 마라", 참 쉬운 말이다. "남을 속이지 마라.", 그래, 젊은이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아도 크게 남을 속이지 않았으며 그런데로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 그런데 "자기를 속이지 마라."는 말씀에서 그만 가슴을 쳤다고 한다. 그 길로 젊은이는 다시 성철 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한 사람을, 하나의 조직을, 하나의 국가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딱 한 가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건 바로 '정의'를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 강단에서부터 시작해 한국 사회에 지금까지도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는, '정의'에 대한 강의가 생각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내가 동경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자본과 경제 논리로 이룩한 탐진치의 미국조차도, 미국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유산은 다름 아닌 '정직'이다. 그런 미국에서 160여년 전에 태어난 소로우와 뒤늦게나마 그를 알아본 미국이 지닌 또 하나의 얼굴에 그래도 희망을 둔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 '정직과 정의'와 '신뢰'는 첫 단추가 된다. 하지만 탐진치와 허욕에 눈이 먼 자들에게 '정의'란 분리수거라는 유예기간의 여지도 없이 곧바로 폐기처분 가능한 가치일 뿐이란 말인가? 나에겐 '진리'의 길로 이어주는 더없이 소중한 가치가 '정의'인데,

이 추운 겨울날, '법과 정의' 앞에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검찰 조직과 야당과 그들을 추종하는 눈먼 언론이 밥상을 차려서 국민들 앞에 내놓았다. 나는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처럼 새하얀 밥알을 그래도 한 톨은 기대하면서, 그들이 내놓은 밥을 두루 살펴보았다. 장차 내가 선택한 밥은 나와 더불어 이웃과 자녀들과 널리 나누어 먹을 밥이기에 선택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

그 밥이 된 한 사람이 있다. 밥이 속까지 검게 탔는지 썩은 밥이다. 우리네 선조들의 속담에도 나온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다.' 다 된 밥에 콧물이 떨어졌는지 모른다면 맛있게 먹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내 눈 앞에서 밥 속으로 떨어지는 그 콧물을 보았다면, 누군들 그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더구나 그들이 차려준 밥은 잘된 밥도 아니고, 법과 정의를 상실한 썩은 밥이다. 공평과 정의를 생명으로 하는 법의 저울추가 사람에 따라서 이권에 따라서 저울질을 달리 한다면 그건 이미 고장난 법과 썩은 밥에 해당된다. 

단풍이 아름답던 지난 시월의 가을날 '위드 코로나'로 잠시 맑은 숨을 쉴 수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변종 오미크론까지 가세해 우리는 다시금 사회적 거리두기의 안전망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백신 부작용으로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바이러스란, 정의를 무너뜨려가면서 무릇 정신과 마음과 영혼을 해치는 거짓의 바이러스가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만 배나 더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썩은 밥을 어떻게 더불어 먹자고 하며 또 먹일 수 있을까? 한 가정 안에서도 앞선 부모 세대는 후대의 자녀를 위하여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늘 부끄럽지만 자연의 거울을 피할 수는 없다. 숨쉬는 매 순간마다 내 몸속으로 속속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 하늘처럼 숨줄이 붙어 있는 한 정의는 하늘처럼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누런 콧물과 같은 사람이다. 동종동색의 부부처럼. 썩은 밥에 떨어진 거짓과 허위의 누런 콧물이다. 주가 조작이라는 사기죄로 조사를 받다가 자기를 조사하던 검찰 총장의 아내가 된 사기범(참 신기한 일이다.)인, 코바나 콘텐츠의 대표가 학창시절부터 50세가 넘도록 지금껏 초지일관된 거짓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가 15건에 달한다. 이어서 터져 나오는 뉴욕대 허위 학력와 숙대 논문 표절 증거까지 파고 또 파도 온통 거짓과 거짓된 삶의 증거들 뿐이다. 

막장 드라마와 영화를 안 보는 나로선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대한민국의 역사에 빨간줄을 긋는 희대의 사기극 앞에서 찝찝하고 괴롭고, 더럽혀진 눈을 어디서 씻어야 할지 사실은 눈 씻을 곳을 찾느라 혼자서는 더 바쁘다. 그를 직접 만났다며 스스로 나선 증인의 증거처럼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의 쥴리 경력만 빼고는 눈물 한 방울까지도 거짓일 수 있다니.

그동안 그가 몸 담았던 곳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이다. 그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때 모 대학의 교수였고, 겸손히 시간강사라 자신을 소개하며 이미 자기를 속였던 그 이름은 쥴리다. 라마다 르네상스 조남욱 회장에게 소개받은 쥴리를 만났다며 스스로 증인으로 나선 안해욱 초등학교태권도연맹회장의 인터뷰 영상을 살펴보았다. 쥴리를 두고 "첫인상이 남자상이고 신기가 있어 보였다.", 사실 여부 확인에 혈안이 된 인터뷰 기자의 거듭되는 질문 공세에 안해욱 태권도 회장의 느긋한 한 마디가 크게 공감이 된다. "우리는 그냥 느껴요."

적어도 정상적인 인지력과 감지력을 가진 동물이 아닌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거울에 비추듯 바로 비추어 보이는 것이 있다. 적어도 한 사람의 인상과 표정과 말투에서 엿볼 수 있는 그만의 인생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걸로 불충분하다면 이미 대한민국은 증거 법치주의국가이다. 문서 증거가 수두룩하고 증인이 스스로 나서고 있는 상황인데도 증거 채택과 구속 기소를 도둑이 뒷걸음 치듯이 미루고 있는 검찰 조직을 국민들은 과연 어디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곧 구속 기소라는 그 거짓에 합당한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코바나 콘텐츠 대표 김건희(개명 전 김명신)는 자신의 학력과 경력 위조를 두고 결혼 전 단지 돋보이고 싶어한 마음에 범한 자신의 실수라며 거듭 자기를 속이고 있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사기죄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 허위·사기죄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교육계와 밀접 접촉자인 다른 교사들과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다 된 밥에 빠진 콧물을 아무도 먹지 않는다. 더군다나 썩은 밥에 빠진 이 콧물은 맑은 콧물이 아닌, 허위와 거짓의 고름이 코로 터져 나온 누런 콧물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코바나19금 바이러스다. 우리 아이들아 조심하자. 그래도 곳곳에서 촛불처럼 번지는 눈 밝은 2030 젊은이들이 있어서 숨을 쉴 수가 있다. 

한 사람을, 한 국가를 바로 세우는 길은 딱 하나만 올바로 세우면 된다. 그건 바로 성철 스님의 세상을 향한 첫 법문, "자기를 속이지 마라", '정의'를 바로 세우면 되는 것이다. 

이 추운 겨울날 허위와 사기와 거짓이 터져 나와서 푼 누런 콧물이 떨어진 썩은 밥을 내놓으며,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하는 야당과 거기다가 거짓 포장지로 포장하느라 애쓰는 언론의 뒷힘이 나는 늘 궁금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그 괴물은 살아서 그들만의 잔치 밥상을 위하여 거듭 꼭두각시를 세워오고 있으면서 그들만의 탐진치를 채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급기야 썩은 밥에 누런 코가 빠진 폐기해야 될 밥을 국민들에게 먹으라며 내놓기에 이르렀다니.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 참 애쓰는 일부 언론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꼴처럼 우스운 광대꼴이다.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내놓은 '누런 코가 떨어진 썩은 밥'을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 다양하겠지만, 나의 선택은 그냥 안 먹으면 된다. 욕을 하면서 내 입을 더럽히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단어를 선정하면서도 참 찝찝하다. 하지만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였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정의의 맑은 하늘이 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마음이 가리키는 정의와 진리의 세상을 보여준 모범생 석가모니 부처님과 진리의 몸과 우리들의 밥이 되신 예수의 아름다운 밥이 엄연히 어둔 세상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 모진 겨울 바람이 국민들의 맑은 눈을 더 맑게 씻겨주고 있는 듯하다. 투명하도록 푸른 겨울 하늘이 나의 눈을 더 푸르게 지켜주는 듯하다. 제 아무리 검은 손바닥들이 우리들의 눈을 가리려고 해도 곳곳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젊은이들의 육성이 터져나와 곳곳에서 빛난다.

그리고 참 기쁜 소식이다. 예수의 밥을 뿌리치고, 썩은 밥과 손을 잡은 탐진치의 전당이 된 대형 교회당과 함께 침몰하고 있는 일부 개신교 소식으로 암울한 이때에 그래도 얼어죽지 않고, 대한민국의 고대로부터 유유히 내려오는 태권도 정신이 살아 있었다. 증인으로 스스로 나서 준 안해욱 초등태권도연맹회장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인상이 참 믿음직스럽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나에게 물으면, "우리는 그냥 느껴요." 

사실 이런 글을 적고 있다는 현실 앞에, 스스로 공부가 덜 되었음을 나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바라볼 곳이 있어서 마음은 느긋하다. 그리고 언제나 한 사람이 있다. 그건 정의와 진리의 몸으로 이 세상에 몸을 낮추신 예수님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