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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천인공노(천공)

by 한종호 2022. 4. 2.





내 인생의 스승을 찾기 위해서
한 권의 책도 함부러 선택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 신학기에 국어 담당이신 담임 선생님이 학급문고를 만들려고 하니, 집에 있는 책들 중에서 각자 두 권씩만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당시 우리집에 있는 책이라곤 
한 질의 백과사전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나보고 쓸데없는 책 읽지 말고 학교 공부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교과서만 보았고, 백지 같은 머릿속에 입력된 건 교과서와 매 수업 시간마다 과목 선생님들의 재미난 수업 내용이 대부분인 중학생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중3 때는 시험지를 풀면서, 선생님이 여기서 장난을 치셨네, 하면서 함정은 피해갈 수 있었고,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또래들이 돌려보던 '인어공주를 위하여'라는 그 흔한 만화책도 내 손은 피해서 지나갔다. 오죽했으면, 시험 기간이 끝나던 날 대여섯 명의 친구들을 따라서 처음으로 들어간 만화방에서도 만화라는 게 영 시시하게 다가왔고, 만화책을 읽느라 신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조심스레 가방에 있던 교과서를 꺼내서 조용히 보았다. 그런 나를 친구들도 그냥 냅뒀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수업시간이면 매 과목마다 처음에 등장하는 의문 문장이 꼭 있었다. 한 단어에 대한 역사와 사회적인 '정의'와 '의미'였다. 내겐 '재미'보다 늘 '의미'가 문제였다. 잡히지 않는 물처럼 바람처럼 언제나 '의미'는 내게서 맴돌았다.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한 가지의 사안에 대하여서도, 나 혼자서는 역사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의미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져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곤 한다.

그런 중학생이 나였기에, 담임 선생님이 내주신 학급 문고 두 권이 마치 내게는 인생의 숙제로 다가왔다. 아무 것도 모를 때지만,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그냥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대신동 영주터널 앞 사거리에서 동대신동 시장 방면으로 골목길을 돌면 모퉁이에 작은 서점이 있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통 유리 사이로 책들이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그 안으로 데려간 적이 없었고, 나 스스로도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한 적 없었던 작은 서점.

그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서점이란 곳으로 들어간 일을 두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으로 추억한다. 학급 문고라고 하지만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대로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심스레 서점 안으로 들어온 어린 중학생에게 서점 주인 아저씨는 찾는 책이 있느냐고 물어오셨고, 나는 "학급 문고 만드는 책이오." 그 이상 우리 사이에는 이어지던 물음도 없었고, 대답도 없었다. 침묵이 흘렀고 커다란 침묵이 흘렀다.

서점 안의 책들이 인생의 숙제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길을 잃은 순간이었다. 내가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이 어디에 있을지, 어떤 책이 '의미'가 있을지, 나는 찾아야만 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확실한 방책이 스쳤다. "다 읽자."

나는 서점 안에 있는 책들의 제목을 하나씩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마치 오랜 세월 정박해 있던 거대한 선박을 미세한 힘으로나마 움직이려는 듯한 묵직함으로 서서히 손끝부터 하나씩 하나씩 제목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한 미련스런 일이었다. 매대에 누웠는 책,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의 제목을 일일이 다 읽으며, 내 가슴에 하나씩 대어 보았다. 마치 수학 시간처럼 일대 일로 대입해 보았다. 

미련한 것 같지만, 그것 말고 내겐 다른 비약적인 방법이란 없었다. 자칫 한 톨의 진실 하나라도 놓칠 수 있는 여지를 둘 수는 없었기에, 어떠한 편법이나 비약적인 효과적인 방법 가령 누군가에게 대신 찾아달라거나, 이런 쉬운 방법을 적용하다가 허술하게도 진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그건 시험지 앞에서 올백을 맞기 위해서, 쉽게 푼 문제라도 시험 마치는 종이 치기 직전까지는 끝까지 시험지를 물고 늘어지던 습성이 그대로 적용된 탓이리라. 그러면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점 안에는 침묵의 강물만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아무도 나의 항해를 방해하는 이가 없었다. 지금 세월이 흘러 문득 생각하니, 말없이 기다려준 서점 주인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지루하리 만치 기다려준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난생 처음 들어간 그 서점의 크기가 작아서 다행이었다. 요즘처럼 대형 서점이었다면, 헤매다가 중간에 지쳤을지도 모른다. 동네마다 그런 작은 서점들이 당산 나무처럼 서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로 어둔 밤 모래밭에서 두 개의 보석을 발견하고 말리라는 기세로 눈에 마음에 불을 밝혔던 시간이다.

누웠는 책들 중에서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 중에서 <도올 김용옥의 중고생을 위한 철학 강의>를 골랐다. 마음에 쏙 들었다. 책 표지에서 본 도올 선생의 눈빛과 모습이 문득 마음에 들었다. 지금의 말로 표현하자면, 진지한 구도자의 눈빛으로 다가왔다.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은 마음의 고향처럼 편안하게 다가왔다.

그때까지 나는 법정 스님과 도올 김용옥 선생을 알지 못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그 두 명의 보석은 그렇게 나에게는 어둔 밤 어둔 세상에 빛나는 별처럼 저절로 드러나 보였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인생의 스승에 대한 열망은 끊이지 않다가, 2004년에는 요가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 진짜 목적은 인생의 스승을 만나기 위하여 인도로 갔다. 5개월 동안 인도 전역을 돌면서, 오쇼 라즈니쉬(이제는 마음에서 지운 사람)의 아쉬람부터 주위에서 스승이라 불리는 이가 있다고 하면 발길을 그곳으로 돌리었다.

캘커타를 거쳐 비하르와 요가의 본고장 리쉬케쉬와 달라이 라마의 임시 정부가 있는 다람살라 등 북인도로 갈수록 스승을 만나기 위한 열망은 더해갔다. 마침 그곳에는 달라이 라마는 타국 순례 중이었고, 그의 후계자인 2명의 까르마파 중에서 한 명과 친견을 할 있었다. 한 가지의 질문에 대해서 한 가지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나의 질문은 "나의 스승을 언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어린 까르마파의 답변을 잊을 수가 없다. 사실은 당연할 수도 있는 그의 답변에 힘이 빠지던 순간이기도 했다. "때가 되면 만납니다."

책에서 만난 스승들 중에서는 라마나 마하리쉬를 동경했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수행자들에게선 실망감이 먼저 일던, 스승을 만날 때를 못 만난 것 같은 그런 시절이었다. 불가의 수도승들이 말하는 시절 인연이 닿지 않았던 시절이었겠지. 

그런데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내게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면, 지금 바로 내 눈 앞에 예수가 나타나고 부처가 나타난다고 해도, 정작 내가 알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사실이다.

그때부터 스승을 찾아 외부로 떠돌던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 비로소 나의 내면으로 향하게 되었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 법정 스님의 책에서 본 석가모니의 가르침.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라.'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천지개벽과 같은 대전환점이었다. 그때부터 세상을 떠돌기보다는 내 마음에 맞는 책을 찾아서 읽거나,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점차 만족과 감사의 에너지로 전환이 되기 시작하였다.

네 살이 된 큰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개량 한복을 차려 입고, 앵통( 다구 통)을 들고서 다실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번은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의 행다 수업에 양해도 없이 찾아와서는 혼자서 흥분해 들떠 무언가 얘기를 하던 일이 생겼다. 내용인 즉 대단한 도사님이 나타나셨다는 소식이었다. 그 도사의 이름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지도 않았지만, 한 순간 마음 거울에 찍힌 그의 얼굴과 차림새와 눈빛만은 잊을 수 없다. 

낯선 아주머니의 선창이 있고 나서, 드디어 긴 머리와 긴 턱수염의 도사님이 도포 차림새로 나타나셨다. 다도에서 의미하는 최고의 정신이란, '내 집에 도둑이 들어와도 차 한 잔 대접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배우던  우리는 그런 학인들이었다. 

우리는 잠시 행다 수업을 중단하고, 자연스레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둥근 원형의 찻자리를 만들어서 둥글게 둘러 앉았고, 그 도사님은 나와 마주보고 앉았다. 당시에 도인 같은 몇 마디를 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가슴에 남는 말이라곤 한 톨도 없었다. 나는 습관처럼 그 도사라고 불리는 사람, 내 앞에 선 그 한 순간, 그의 모습 그 자체를 내 마음 거울에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갈 무렵, 내 안에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나왔고, 그 마음 그대로 내 얼굴에선 헛웃음이 비쳤고, 나와 서로 마주보고 있던 그 도사의 얼굴에서도 그대로 풀썩 그도 내게 헛웃음을 보였다. 

그 도사라는 자의 얼굴을 최근 방송에서 보고는 우리나라가 하나의 커다란 개그콘서트 무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 도사는 2008년~2009년에 잠시 나를 스쳐간 헛개비였다. 그에게선 진리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가 천공이다. 국가적으로 천인공노를 일삼고 있는 대한민국을 무대로 개그콘서트의 판을 벌이고 있는 코미디언이다. 그리고 그의 역할은 도사님이다. 

당시에 그와 마주보고 앉은 자리에서, 내 마음이 비춘 그의 실체란, 구도의 길을 걷는 도사님처럼, 진실과 진리의 냄새가 풍겨나기보다는 거짓와 허욕의 역겨움을 느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둡던 나의 가슴을 비추는 별빛을 쫓아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 별빛은 나의 안목과 내 공부의 길이 되고 있다. 

거의 원시 상태에 가깝던 나의 중학생 시절의 의식에서, 작은 서점 안에서, 적어도 나 스스로 내 마음이 일일이 제목을 대입해서 비추어 스스로 선택한 진실이란, 법정 스님과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후로 내게 후회와 실망을 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비록 천공이 그의 입으로 진실을 말한다 하고 미래를 예언한다 할지라도, 그의 행보 자체가 이미 진실과 진리의 노선에선 이탈해 있었다. 

구도의 길을 걸으며, 공부를 하는 자에게는 누구든 경계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참된 진실과 진리의 공부로 나아가는 이에게는 다만 물처럼 바람처럼 그 경계를 무심히 지날 뿐이다. 그래서 구도자가 걷는 길이란 무소유와 무욕의 길, 날마다 새롭게 자신의 욕망을 거듭 지움으로 어둔 세상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를 비춰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경계가 나타날 때, 그것으로 돈 벌이를 일삼고, 이 세상에 자신의 교세와 힘을 확장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는 구도의 공부는 끝장이다. 한 사람의 과거를 본다든지 하는 어줍잖음으로 돈벌이를 하며 이 땅에 세를 확장하려는  욕망과 소유의 길을 걷는 이들을 우리는 박수 무당이라고 부른다. 

박수 무당이란 이미 스스로 진실과 진리의 노선에서 이탈해, 이 땅에 어줍짢은 자신의 안목으로 거짓을 진탕 버무려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신천지와 같은 일당들이다. 거짓된 그들에겐 그림자처럼 돈과 어리석은 여자들과 헛개비 같은 권력이 그 뒤를 따른다. 내가 그날에 그 자리에서 도사라며 나타난 천공, 그의 거짓된 모습을 향해 날린 피식 헛웃음처럼, 오늘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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