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아이들의 감기약은
가장 쓴
인생의 쓴맛이었다
봄날에도
기침이 잦았던 나는
약을 먹지 않으려고
목련 꽃봉우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달아나지도 못하고
나뭇가지 끝에 앉은 듯
아빠 다리를 하고서
요지부동 앉아 있으면
아빠는 밥숟가락에
하얀 가루약과 물을 타서
큼지막한 새끼손가락으로 푹
무슨 약속이라도 하시려는 듯 휘휘
가루약이랑 물이 풀풀 날리니까
나중엔 젖가락 끝으로 휘휘
살살 약을 개어서
먼저 맛을 보셨다
아빠는 그 쓴 약을
설탕처럼 쪽쪽 드시며
쩝쩝 소리까지 내시면서
"아, 맛있다! 감탄사까지 타신다
세상이 다 아는
하얀 거짓말까지 하시는데
아빠 얼굴을
아무리 살펴 보아도
구름 한 점 없이
웃기만 하신다
나는 속으로
걱정이 되어서
감기도 안 걸린 아빠가
내 감기약을 드셔도 되는지
사실은
미안한 마음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서
"아" 했다
하얀 목련꽃 같이
하얀 기침처럼
내 입이 달아나느라 남긴
약숟가락을 사방 돌려가며
아빠는 입으로 말끔히 닦아드신다
발우공양 하듯이
약숟가락 아니 밥숟가락이 반짝
아빠 앞머리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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