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박한 자전적 비망록은 저자가 자의식이 생긴 대략 너덧 살 어린아이 때부터 서른에 이르기 전 몸이 겪어낸 자잘한 일상의 기록이다. 어설프고 어리숙했기에 돈키호테의 막무가내 열정으로 낯선 세계와 부대끼길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키와 몸무게가 늘어나면서 정신도 꾸준히 자랐겠지만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저자를 둘러싼 사람들과 만나고 엮인 인연은 생에 다채로운 무늬와 얼룩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오늘도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고 그 권태 속에 스트레스가 일용할 양식으로 넘쳐날 때, 또 원치 않는 억압적 상황에 부지불식간 포위되어 치일 때 저자는 흔적으로 남은 그 아득한 시절의 천연 공간으로 연거푸 피정을 떠나곤 한다. 그러면 다시 과잉 거품 속에 더께 진 내 욕망의 실체가 보이고 세월 속에 오래 풍화된 내 영혼의 몰골이 다시 정리된다. 덩달아 저자는 비로소 알아차린다. “아,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저편에서 아직 무던하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생명의 온기가 바람에 실려 이편으로 불어온다는 사실을!” 또 아주 드물게 깨닫기도 한다. “이 덧없는 생이 마무리되는 그 순간, 나는 고통 속에서도 환하게 미소 한 점 남길 수 있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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