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16)
본회퍼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오늘(4월 9일)은 독일 신학자이자 나치스에 저항했던 디트리히 본회퍼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70년 되는 날이다. 그는 현실의 고난, 그 중심에서 하나님으로 자신을 드러낸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촉구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영광스런 신적 존재를 기대하고 있는 이들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본회퍼는 바로 이 십자가 신학 속에 인간과 하나님의 만남을 극적으로 목격한다.
그는 나치스로 인해 독일은 물론이고 인류 사회가 전쟁과 억압의 현실 속에 빠져 들어가는 것에 대해 분노했고, 이를 막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희생당해도 좋다고 믿었다.
그런 점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과 현실의 권력이 정면에서 충돌한 지점이었고, 그 자신은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에 매달린 운명이 되었다. 나사렛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 자신도 사형을 당했고, 죽음으로 마감했으나 그것으로 본회퍼의 삶이 잊혀지고 패배당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도리어 역사의 무덤에 묻히고 패배의 낙인이 찍힌 것은 본회퍼를 십자가에 매달은 나치스였다. 그것은 로마의 권력과 이와 야합한 그 모든 세력이 예수를 죽였으나 역사가 패자로 결론지은 것은 바로 그들 살해자들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가 말한 유명한 비유는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일깨운다. “술 취한 버스 기사가 몰고 있는 차 안에 있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만 하면 될까? 아니면, 그 기사에게서 운전대를 빼앗아 승객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일까?” 본회퍼의 대답은 분명했다. 미쳐가는 사회에서 이 미친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들과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으면 모두의 안전과 생명은 온전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이 본회퍼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 교훈 역시 분명하다. 이 사회가 과연 올바로 가고 있는지, 사회 구성원들에게 진정한 안전과 생명을 보장해주고 있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로서의 행동을 선택하는 신앙의 용기를 품고 실천해야 한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진상규명의 길은 멀기만 하다. 정부는 세월호 진상 규명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이 참담한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본회퍼는 기독교가 교회의 종교가 되고 있음을 탄식했다. 그는 기독교가 세상 속에 존재하면서 그 세상의 고뇌와 마주하고 신앙의 능력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회 안에서 구원을 외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억압의 현실 그 중심에서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것, 그것이 곧 예수의 뒤를 이어가는 기독교의 진정한 역할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에 비하자면, 한국교회는 교회 안의 종교가 되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의 현실 앞에서 아무런 외침과 행동의 고뇌가 없다. 분단의 지속 앞에서 승리주의 신학에 매몰되어 반북 캠페인에 몰두하고 있다. 이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진정한 생명의 미래를 펼쳐나가는 일에 진력을 다하기 보다는, 권력과 자본의 기득권에 동참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리는 고통을 겪는 한이 있다 해도 정의와 평화, 선과 생명의 길을 가는 선택을 하려는 교회는 지극히 적어 보인다.
지금 교회는 세상의 영광을 구한다. 세상의 권력을 향유한다. 세상의 지위를 얻으려고 한다. 으리으리한 교회 건물 속에서 신앙의 열매를 확인하려 들고 신도의 숫자로 신앙의 위력을 입증하려 든다. 지금 기독교는 반감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신앙을 희화화하고 대중들에게 가벼운 웃음을 선사하는 미끼로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하려는 얄팍한 선교술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본회퍼에 대한 관심은 존재할 수 없다. 본회퍼가 보았던 현실의 모순과 억압에 눈뜨지 못하고 있는 이름만의 교회일 뿐이지 사실은 기독교의 옷을 입은 탐욕과 무지에 찬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그 교회 앞에서 현실은 눈물을 흘리고 애통해한다.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파하며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자, 복이 있다”고.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본회퍼가 예수의 뒤를 따라 그리도 애통해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것과는 달리 욕심에 휩싸여 또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는 그 권력을 난타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뜨겁게 들려야 하는 그런 지점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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