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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호의 '너른마당'

독기를 품은 혀

by 한종호 2022. 7. 23.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잠언 12:18)

 

말의 역할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인가? 그렇다면 어떤 의사도 다 소통되면 말의 역할은 다 한 것인가? 악한 의사를 소통해도 말은 중립적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

 

성서는 말의 역할을 의사소통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생명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하여, 그것이 인간의 생명에 상처를 내는가, 아니면 앓던 병도 낫게 하는 능력인가로 판별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로 인간의 생명에 상처를 내고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뿐인가? 잘 나아가던 상처도 덧나게 함으로써 병통을 더욱 도지게 하고 만다. 그래서 신앙은 이 말의 훈련을 제일 중요한 일로 삼는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생명을 핍박하는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기운을 북돋는 것인가가 여기에 달려 있다. 우리는 복음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그런 말씀을 사모하는 입술로 생명의 기운보다는 죽음의 독기를 뿜을 때가 훨씬 더 많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한 입으로 단물과 쓴물을 모두 내는 샘이다. 그 샘은 종잡을 수 없는 샘이며,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더욱 병들게 하고 만다. 하나님이 어디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인가? 너무도 명확하시지 않은가? 그분을 우리는 생명의 말씀, 그 자체로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분은 오로지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능력의 말씀만을 내어놓으시는 분이 아닌가?

 

우리의 말이 비수가 된다. 그래서 그 심장에 꽂혀 상대를 즉사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의 말이 그런 칼이 되어 상대를 난도질하는 줄도 모르고 함부로 입을 벌리는 경우가 숱하며,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그래서 멀쩡하던 사람들이 밤새 속앓이를 하고, 위병이 난다. 어찌 칼을 들고 찔러야만 살인인가? 말로 꽂는 비수도 역시 살인행위라는 것을 신앙인은 의식해야 하지 않겠는가? 카인은 그의 아우 아벨을 죽이기 이전에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 칼을 들었다. 그러니 말로 비수를 던지는 자는 이미 살인자이다. 그런 이의 마음에 사랑이 자라날 수가 없으며, 용서의 너그러움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그러한 영혼은 끝내 자신을 고갈시켜 황폐한 인간으로 변모시켜 버린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상처를 파헤치고 헤집는 칼이 아니라,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그런 약의 능력을 가질 수 있기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한다.

 

사방에 자신을 내세우고 남을 난도질하며, 죄와 타락을 부추기고 오해와 편견을 조장하는 비수 같은 말이 널리고 널린 때에, 우리는 지혜로운 말로 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대가 고단하고, 지혜로운 말을 잃어버린 세대에 아름다운 말의 힘을 되찾아 주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말은 축복하라고 있는 것이며, 감사하라고 있는 것이고, 칭찬하며 사랑하라고 있다. 그렇지 못한 말은 이미 말이 아니라, 저주이고 사탄의 독기를 품은 뱀의 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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