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마태복음 5:11)
나사렛 예수의 산상수훈은 복을 받는 자의 모습에 일대 역설을 기한다. 그가 말한 복 있는 자는 사실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모두 지지리도 복이 없는 현실을 안고 사는 자들이다. 가난하고 슬퍼하며 자기 권리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만 같은 온유한 자와, 의에 목마르고 박해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한다. 부유하고 기쁘며, 세상 이치에 밝아 자신을 확실하게 내세우고, 박해받을 이유가 없는 자들이 거론되고 있지 않다. 그러면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복이 있다는 말인데, 그렇게 얻게 될 복이 도대체 무엇일까? 더군다나 마태복음 5장 11절의 모욕, 박해, 그리고 비난은 누가 받고 싶어하는 일인가?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복의 정체, 그 근원에 대한 중대한 정의가 숨겨져 있음을 본다. 일상적 통념이 정의하는 복은 현실에서의 성취에 주목하는 반면에, 산상수훈이 지시하는 복은 그런 성취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삶 속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실현되고 있는가 없는가에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 어떤 처지에 놓이는가가 관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도리어, 현실의 성취가 손상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실현되는 일을 위해서 모욕과 박해와 비난을 마다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것이 참된 복이라고, 나사렛 예수는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언급하고 계시는 복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현실의 성취라는 유혹을 거부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복’은 하나님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의 영광을 취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일을 위해서는 모욕과 박해와 비난도 각오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현실이 제공하는 유혹과 탄압 앞에서 어느 것을 더 귀중히 여길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복이 있다 함은 무엇이 진실로 가치 있고 귀중한지를 아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이다. 그런 이에게만 경험되는 비밀이다. 다른 이들은 그것이 복인 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는 아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감격을 이미 맛보고 소유하는 것이다. 그 감격이 세상에서 받는 모욕과 박해와 비난을 능가하며 이긴다. 그러니 그는 그러한 핍박과 고난이 두렵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따로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로써 그에게 어떤 차원의 세계가 경험되는지를, 그는 날이 갈수록 확인하게 된다. 하여 그 복의 정체는 구체적으로 밝혀지기보다는 여백으로 열려 있다. 그 복을 체험하는 자에게만 열리는 세계이며, 미리 규정해서 한정지을 수 없는 무한의 복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사렛 예수는 자신으로 인해 받게 되는 모욕과 박해와 비난은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의 상이 크기 때문이며, 예언자들도 그리했다고 확증한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이 복에 대한 관심이 아예 존재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예수 때문에 우리가 모욕을 받고 있는가? 박해를 당하고 있는가?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을 받고 있는가? 예수 때문에 핍박받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오만한 권력을 예수의 이름으로 일깨우고, 탐욕스러운 부자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시키고, 소수에게 독점되고 있는 재물을 예수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돌아가게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는 일에 우리가 나서고 있는가? 예수의 이름으로 불의에 항거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하며, 민족이 원수 되고 있는 벽을 예수의 이름으로 우르릉 탕탕 허무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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