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까
낭낭 18세 딸아이가
풀풀 국수를 삶고 있다
간장 식초 설탕 마늘 참기름 깨소금
더 넣을 필요없는 완벽한 양념장
하얗게 삶아낸 국수 가락에
네 식구들 입가엔 미소가 함지박
젖가락으로 간장 국수를 먹으며
숟가락도 필요없다는 생각이 든다
간장 국수가 참 맑아서 줄줄이
생각과 생각이 잘도 이어진다
만일 계란이 들어갔다면 뚝 끊어졌을
만일 고기가 들어갔다면 싹 지워졌을
나의 사색이 걸어갈 수 있는 개운한 길
좁다란 국수 가락이 오솔길이 되어
어릴적 간장 국수를 삶아 주시던 아빠도 만나고
불일암 수챗가에서 국수를 씻어 드시던 법정 스님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스님의 양념장엔 없었을 식초 설탕 마늘을 보며
우리 양념장엔 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착하고 맛있는 간장 국수를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날
오늘 저녁엔 국수 가락이
빗줄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기도해야겠다
천국으로 이어주는 하얀 다리가 되어 달라고
까만 간장 양념장에 빛나는
하얀 국수 가락처럼
어둡고 가난해진 하늘나라 밝히시려는 뜻
심부름꾼 빗물이 먼저 안고 간 맑은 영혼들
손 꼭 붙들고
천국으로 이어주는
하얀 길이 되어 달라고
다리가 되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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