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서일과(9월 20일 화요일 )
시편 12편, 시편 106:40-48, 잠언 17:1-5, 예레미야 10:1-16, 고린도전서 9:19-23
*꽃물(말씀 새기기)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예레미야 10:14-15)
*마중물(말씀 묵상)
첫 번째 책(<시골 목사의 행복한 글 여행>, 2016, 동연 간)을 출간했을 때, 세계적인 IT 기업의전문가인 니콜라스 카의 ‘The Shallows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북 리뷰를 소개했다. 그때에 적시했던 한 문장이 떠오른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문학적 사고를 보편적 사고의 형태로 만들었지만, 현재 이 문학적 사고의 소멸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조짐에 시동이 걸렸다.”(p,247) 양날의 칼날이다. 중요한 것은 인쇄기 발명이 이 정도의 변혁점이 되었는데 컴퓨터, 그리고 AI로 이어지는 오늘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싶다. 예레미야 예언서의 구절대로 직접적으로 조각한 신상, 은장이가 부어 만든 우상이라는 표현을 컴퓨터라고 지칭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시대에 컴퓨토피아에 속해 있는 일체의 문명적 도구들이 왠지 모르게 예언자가 말한 조각한 신상, 부어 만든 우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더 더욱 이런 것들에는 생기(루아흐)가 없다는 예언자의 말은 오싹하게 하기 까지 한다.
우의정 구글, 좌의정 네이버인 시대에 봇물처럼 흘러넘치는 정보에 나는 왜 생기가 없어 보이지! 언젠가 출신 교단 선배가 출간한 책을 내게 보내주어 1장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그이보다 몇 년 앞선 장로교단 목사가 출간한 책을 거의 카피하다시피 한 대목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에 회자되는 글들을 마치 자기 글인 양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 담대함에 아연실색하지만 그건 잠시 뒤, 숙연 모드로 바꾸어준다. 그런 글에서 생기를 느끼지 못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말이다.
표절도 국가권력으로 상식이 되도록 만드는 괴물들이 우글거린다.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이 많이 버겁지만 루아흐를 불어넣으시는 주군을 바라보며 거짓의 화신들에 대해 더 치열하게 맞서야겠다.
*두레박(질문)
나도 모르게 음습하는 남의 지식 도적질하기에 치열하게 싸우고 있나 묻자.
*손 우물(한 줄 기도)
구글, 유트브, 네이버, 다음에서 생기를 찾지 않게 하시고 치열하게 공부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조명 받게 하옵소서!
*나비물(말씀의 실천)
내게 주어진 독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지성적 영성의 진보를 위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각오를 새롭게 하자.
*하늘바라기(중보기도)
하나님, 교회학교 사역이 너무 힘이 듭니다. 이대로 무너지는 교회학교 사역을 위해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펜데믹과 더불어 시작된 무너진 영혼들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이강덕/제천 세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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