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차 한 모금에
그윽해진 가슴으로
고요히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의 출발점은 어딜까 하고
우리가 태어난 집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졸업한 학교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닌 첫 직장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혹, 저잣거리에 떠돌듯
물고 태어났다는 흙숟가락 금숟가락일까?
물음과 물음을 따라서
흐르는 생각을 따라서
깊어진 가슴으로
깊은 숨을 쉽니다.
숨을 쉽니다.
숨을 고릅니다.
날숨과 들숨이
평화롭게 걸어갑니다.
숨을 고르는 이 순간
우리 인생의 출발점에서
날숨과 들숨 같은
생(生)과 사(死)가 사이좋게 걸어갑니다.
해인사의 장경각 법보전 주련에 새긴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時)
날마다 새롭게
숨을 고르는 이 순간마다
모두에게 공평히 내려주시는 은총과 맞닿은
지금이라는 지평선은
우리 인생의 출발점이자
순례길에 가 닿을 궁극의 도착점
인생의 첫 날숨과
인생의 마지막 들숨
그 사이에
무수히 점 찍는 숨
무량겁의 햇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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