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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삶은 감자가 들려주는

by 한종호 2024. 9. 3.

 

 

오늘도
고마운 하루를 주시는

흰구름 더불어 푸른 하늘이 
푹푹 익어가는 여름날

마트 진열대에 투박한 손글씨로 
1키로 2,980원 

떨어진 감자값에 
순간의 반가움 너머로 

한 생각 
바람 한 줄기

흙밭에서 떨구던 땀방울 채 마르기도 전에
짠 눈물에 시려 더운 한숨 짓지는 않았을까

산골에 사는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산다던 

윤동주 시인의 한 줄 글에 
찌는 가슴으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감자는 밥도 된다는데
문득 스친 거울 속 내 얼굴에도

삶은 감자 같은
무상심심 미묘한 빛 어릴까

새벽예불과 일과를 다하고 나서던 아침
양팔 활짝 핀 꽃처럼 나를 부르시며

안으로 들어오라시며
반기시던 시봉 스님

한 분에겐 떠나는 순간
한 분에겐 새로 온 순간

삶은 감자 껍질 같은
수행자의 옷자락 그 스침에 

없던 내가
그냥 있는 것

95세 노스님 드리려고 
아침에 삶으신 감자

식은 감자껍질 같은
예쁠 것 없는

내 두 손에
없는 듯 있던 감자 두 알

이 무더운 여름날엔
밥상에서 그리고 밥상이 아닌 

그 어디든
공평한

심심한 감자가 들려주는
법문에 귀를 기울이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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