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사회, 트라우마 공화국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17)

 

통증사회, 트라우마 공화국

 

 

다시 우리 사회를 생각해본다. 지난 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분노의 메커니즘과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헌데 생각을 달리해보니 우리 사회를 분노사회라 칭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분노의 요인이 무엇일까? 정지우가 지적했듯이 특정한 가치 기준이 깨어질 때 생겨나는 것일까? 내가 생각했던 기준들이 타인에 의해 허물어질 때 튕겨져 나오는 것이 우리 사회 분노의 이유일까?

 

물음이 꼬리를 물 때, 난 우리의 근현대사를 생각해 보았다. 일제 강점기(1910~1945), 105인 사건(1911), 3.1만세 운동(7천여 명 사망, 1919), 제주 4.3사태(14,000여명 사망, 1948), 한국전쟁(최소 150만 명 이상 사망. 그중 민간인이 대다수, 1950~1953), 4.19혁명(183명 사망, 1960), 5.16군사정변(1961), 유신시대(1972~1979), 인혁당 사건(대법원 판결 후 18시간 만에 총 8명에게 사형집행, 1975) 10.26사태(1979), 12.12군사반란(1979), 5.18광주민주화운동(165명 사망, 부상 후유증 사망자 376명, 행불자 76명, 1980), 6월 민주항쟁(1987), 천안함 침몰사건(46명 사망, 2010) 등….

 

거기에 더해 각 시대마다 사회의 부조리와 공의롭지 못함을 온 몸으로 고발하고 저항한 수많은 개인들…. 4.19혁명의 촉매제가 된 김주열(당시 17세), 광주민주화 항쟁을 알리며 투신한 김의기(당시 22세), 군부독재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고발한 김세진, 이재호(이상 당시 21세), 6월 항쟁의 불쏘시개가 된 박종철(당시 23세), 이한열(당시 22세), 그리고 이 땅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며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깨고자 했던 전태일(당시 22세).. 이들 꽃다운 청춘들이 몸을 바쳐 일궈낸 것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던가.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또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인재까지 겹쳐서 생겨난 적잖은 대형 사고들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90년대 이후의 사고들만 꼽아보자. 구포역 열차 탈선 사고(79명 사망, 1993.3.28),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300명 사망, 1993.10.10.), 성수대교 붕괴사고(32명 사망, 1994.10.21.),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29명 사망, 1994.10.24.),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사고(102명 사망, 1995.4.28.), 삼풍백화점 붕괴사고(502명 사망, 1995.6.29.일), 대구지하철 사고(192명 사망, 21명 실종, 2003.2.18.),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고(295명 사망, 현 9명 실종, 2014.4.16).

 

 

 

 

이 정도 꼽아본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근현대사는 고난과 질곡, 죽음과 고통, 그리고 아픔의 연속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말할 것도 없고, 3년간의 한국전쟁 끝에 피해자만 얼마이던가! 무려 백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고, 그중 대부분이 민간인 피해자였다는 것도 세계 전쟁사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런 상황이니 근현대 우리사회에서 상처입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때마다, 철마다, 계절마다 아픔과 통증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 가히 우리 사회를 ‘통증사회’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수십에서 수백, 그리고 수천에서 수만, 심지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희생된 그들에겐 모두 가족이 있었을 터. 그렇다면 슬픈 통증의 인연은 그보다 더한 규모로 계속 커갔을 것이다. 딸이, 아들이, 남편이, 아내가,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삼촌이, 외삼촌이, 조카가…. 이 정도 규모의 질곡이 지나갔다면 우리 사회 어느 누구도 근현대사의 흑주술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

 

헌데 몸의 통증은 마음의 상처를 동반한다. 이를 우리는 트라우마(trauma)라 부른다. 이 말은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왔다. 상처를 뜻하는 이 말은 본디 외과적 의미로 쓰였지만, 프로이트에 의해 인간 심리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정신도 몸처럼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자신을 압박하는 위협의 요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통증은 트라우마가 되어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이상행동의 원인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 정신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원인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속에 억압되어 있는 상처의 원인을 제대로 직시하고 의식의 차원으로 끄집어 낼 때에야 우리는 트라우마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훈련받은 이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고 슬프게도 우리는 저 무지막지하고 어마어마한 사건들의 후유증을 제대로 치료했다는, 그리고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미국의 경우 2001년의 911테러의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치료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근현대사에 상처 입은 수백, 수천만의 피해자들에게 우리사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사회는 사고,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계속 잊으라고만 강요한다. 1년이면 충분하다고, 10년이면 되었다고, 그 정도면 끝난 거 아니냐고…. 하지만 피해자에게 남겨진 상처는 그것의 원인과 과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이해되지 않는 한 계속 남아 그들을 괴롭히게 된다. 침례교 목사요 정통한 이슬람 전문가인 종교학자 찰스 킴볼(Charles Kimball)은 그의 책 《종교가 사악해질 때》(When Religion Becomes Evil)에서 중동의 반서구 심리를 십자군 전쟁(1096~1272)에서 찾고 있다. 킴볼 교수의 전언을 따르면, 지금의 중동인들은 십자군 전쟁 당시 그들이 당한 참혹한 실상을 바로 지금의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냥하듯 무슬림들을 살육하며 심지어 굶주림에 매몰되어 식인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하니 그들의 기억이 잊히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무려 1천 년 전의 상처가 여전히 지금의 기억이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통증은 제대로 진단하고 원인을 적확히 해결하지 않으면 쉬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통증사회이며, 동시에 트라우마 공화국이다. 도처에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이들이 신음하며 아파하는 현장이다. 자신이 상처를 입었고, 자신의 가족과 친족이 고통을 받고 있기에 남의 아픔이 쉬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강퍅해지고, 심성이 피폐해지고, 공감이 무력해진다. 자신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기에 남에게 시선을 두기보다는 곪아 부어있는 자신의 환부 감싸기에만 급급하다. 그러니 서로가 칼이 되고, 창이 되어 날카롭게 찔러만 댄다. 좌나 우나, 노(老)나 소(少)나, 여나 남이나... 모두 자신이 제일 아프다고 슬피 울면서 서로의 트라우마를 보듬고 치유하려는 여유는 좀체 갖지 않는다. 그러니 무조건 덮자고 한다. 잊자고 한다. 자신의 상처 치료하기에도 시간은 모자라다고 윽박지르고만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서로가 으르렁거리는 사이 우리 사회의 통증은 더 깊어지고, 트라우마는 더 깊게 우리의 무의식 속으로 침잠해 버린다. 결국 이 통증을,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길은 문제를 인지하고, 직면하여 서로의 상처와 처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일 텐데... 우리는 당장의 통증이 싫어 망각의 주술에만 의지하고자 한다.

 

이런 망각의 주술은 세월호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1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이제 지겹다고 한다. 지긋지긋하고 충분한 보상이 이뤄질 테니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하지만 일상으로의 복귀가 마음에 난 상처를 다시 회복시켜주지는 못한다. 치유되지 못한 봉합은 이후 더 큰 상처가 되어 우리를, 우리 공동체를 할퀴고 말 것이다. 꼭 프로이드를, 칼 융을, 그리고 라캉을 거론하지 않아도, 이제는 근현대사 속에 우리가 입은 상처를 제대로 드러내놓고 치유해야 할 때다. 그래야 우리의 트라우마가 치유될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아픔을 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다시 덮어버리면 우리의 트라우마를 더 깊게 억압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통증과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통증사회, 트라우마 공화국의 시민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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