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19)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

 

 

세월호의 아픔이 한창이던 2014년 여름에 로마 가톨릭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종은 오랜만에 바티칸의 수장이 된 진보계열의 사제였다. 사전에 예고했던 것만큼 한국에서 그가 보여준 행보는 파격적이고, 신선했고, 또한 감동적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등장한 것부터, 이동을 위해 소형차를 선택했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었고, 아이들에게 입맞춤하는 것마저 자연스럽던 그의 행보는 사회를 뒤흔든 참사에 속앓이를 하고 있던 이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열광으로 그에게 응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며 위로가 필요했던 이 땅에 그의 발자취를 남기려 했다.

 

그리고 적잖은 전문가들이 교종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열렬한 반응에 대해 진단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그들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보여준 소외되고 약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감동을 일으킨 것이라 분석했다. 그리고 경직된 권위주의가 강한 한국사회에 교종이 보여준 부드럽고, 낮은 곳을 지향하는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진단도 이어졌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에만 익숙했던 우리 사회가 모처럼 소통하고, 포용하는 어르신을 만났으니 감동이 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만 이 현상을 해석하는 것은 조금 피상적이라 느껴진다. 이는 단순 리더십이나 수평적 권위주의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눈에 교종에 대한 당시 한국사회의 반응은 왕조적 마인드의 발로로 해석된다. 즉 사람들은 교종을 통해 평소 희구하던 왕의 모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그런 점에서 2014년 여름에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프란치스코 신드롬은 우리 사회가 지닌 왕조적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는 이미 오래전 경험했다. 바로 20092월 오래도록 한국 가톨릭의 수장으로 역할을 하던 김수환 추기경(1922~2009)께서 87세를 일기로 선종했을 때였다. 당시에도 우리 사회는 가신 분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뜨거웠다. 그때도 이런 현상에 대한 해석과 진단은 있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 큰 어른이 없다. 따라서 그나마 어른 역할을 하시던 분의 가심이 국민들에게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번지게 되고, 그것이 거대한 추모 물결로 이어졌을 것이다라는 것으로 정리되곤 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충분히 그렇게 읽힐만한 구석도 있다. 가신 분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이념적으로 좀 편향된 발언을 하시고, 균형 잡힌 비판적 시각도 잃은 것처럼 보여 특정 계층의 인사들로부터는 과히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시절 그분이 보여주신 행위의 올곧음과 일관된 의지 천명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서 앞서 언급했던 교종이나 돌아가신 추기경에 대한 사설을 늘어놓는 것은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들의 삶을 일일이, 그리고 낱낱이 캐어묻고 다닌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이전부터 그분들을 흠모하여 일생의 롤 모델로 삼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분들에 대해서 내가 아는 지식이라고는 생김새와 이름, 그리고 간단한 이력 정도이다. 오히려 내 관심의 구심은 교종의 방문과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탈적 반응에 있을 뿐이다.

 

 

 

 

분명 한국은 가톨릭 국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교종 방문과 추기경의 선종 이후 나온 한국사회의 반응은 가톨릭 국가에서도 나오기 힘든 정도의 몰입이었다. 추기경의 경우를 보자면, 연인원 40만 명이 넘는 추모인파, 자정이 넘어서까지 줄어들지 않는 추모 행렬, 연일 방송과 언론에서는 돌아가신 분의 삶을 추적하느라 메인 뉴스의 상당 시간을 할애하였고, 각지의 유력인사들은 그분의 주검 앞에 마지막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하는 모양새로 이 행렬에 끼어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언론과 방송과 사람들은 또 다시 앵무새처럼 조아렸다. “한국에 워낙 큰 어르신이 없어서그런데 내 눈에는 그런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진단어구가 영 마뜩치가 않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었다. “큰 어르신이 없기는당신들은 어른을 찾은 것이 아니라왕을 찾았던 게지

 

사실 따지고 보면, 추기경 정도의 삶을 산 사람이 우리 사회에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우리 사회에 어른 역할을 하던 이들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라진 어른들의 모양새나 이름은 좀처럼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해 내려고 애조차 쓰지 않는다. 왜냐? 그들은 그냥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종이나 추기경처럼 왕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아서다.

 

몇몇 가톨릭 이외의 종교에 속한 이들은 교종 방문의 환영 인파와 추기경 추모 행렬의 거대함에 마냥 부러운 눈길을 쏟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속한 종교에도 이분들에게 비할 어르신은 또 없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찾고, ‘어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조직의 맨 꼭대기에 서있는 을 찾고, ‘임금을 찾고, ‘황제를 찾는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앵무새처럼 또 읊조린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어서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찾을 수 있는 이 없는 것은 아닌지 .

 

이 점에서 한국사회는 여전히 왕조국가적 성격이 강하다. 북쪽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쪽도 역시 평균 시민의 에토스 속에서 여전히 왕정은 무너지지 않은 간성처럼 견고해 보인다. 주체적 개별자의 자의식에 기초해 이룩된 계몽주의적 시민사회가 아직 한국에서는 요원하고, 먼 일이기 때문인가? 그러다보니 사회적 시선은 언제나 집단을 향해, 그리고 그 집단의 수장을 향해 주목되고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교종과 추기경에 대해 보여준 한국 사회의 반응은 왕의 즉위를 환영하거나, 혹은 왕의 승하를 슬퍼하는 왕조 사회 신민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구태여 구석구석 숨어있는 어르신을 찾아내는 번거로움 보다는, 막 즉위한 황제나, 승하한 왕의 주검 앞에 어르신 이데아를 덧씌우고 싶었던 것이 우리 사회의 오래된 욕망은 아니었을까 .

 

그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하나의 전기를 이루는 분수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왕이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무언가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회를 바꾸는 힘은 슈퍼맨도, 영웅도, 왕도, 임금도, 황제도 아닌, 바로 주권자인 시민 개개인에 있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 안에서, 친구를 잃은 아이들의 분노 안에서, 동료를 잃은 어른들의 서러움 속에서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을 돌볼 이는 슈퍼맨도, 영웅도, 왕도, 임금도, 황제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의 안위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한 어른은 더 이상 어른 일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과 임무를 다하지 않고 대접만 받으려는 어른은 더 이상 어른 일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그런 이들을 어른이라, 왕이라, 임금이라, 황제라 대접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조금씩 성숙해 나간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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