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우리말 “서로”는 명사로도 쓰이고 부사로도 쓰인다. 명사로는 “짝을 이루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를 일컫는 말이다. 부사로는 “관계를 이루는 둘 이상 사이에서, 각각 그 상대에 대하여. 또는 양방이 번갈아서”를 뜻한다. “서로”에는 이처럼 “둘 사이의 짝 관계”가 들어 있다.
히브리어에는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a woman to her sister”) 라는 표현이 있다. 히브리어로는 ‘잇샤 엘-악호타’라고 한다. 이 표현이 바로 특수한 문맥에서 “서로”를 뜻한다.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는 문자대로는 두 자매의 관계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표현이 출애굽기 26장에서만 집중적으로 다섯 번 나온다(출 26:3,3,5,6,17).
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이을 때나 결속(結束)시키거나 연결(連結)시킬 때, 주어 기능을 행사하는 그 물체의 문법적 성이 여성인 경우, 이처럼 ‘잇샤 엘-악호타’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의 기능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잇샤 엘-악호타’는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서로”(one to another) 라고 하는 부사로 번역한다. 예를 들어 본다.
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문자대로는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하듯)’] 연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문자대로는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하듯)’] 연결하고
(《개정》 출 26:3)
베로 짠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여 커다란 휘장을 만든다. 길이 28규빗(12미터)에 너비가 4규빗(2미터)짜리 휘장 다섯 폭을 옆으로 연결하여, 전체 길이 28규빗(12미터) 너비 20규빗(10미터)짜리 휘장을 만드는 것이다.
히브리어 표현을 문자대로 번역하면 “그 휘장 다섯 폭을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하듯’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폭”(‘예리아’)이 여성 명사이기 때문에 한 폭을 “한 여인”(‘잇샤’)이라고 하고, 연결 대상이 되는 또 다른 한 폭을 “그 여인의 자매”(악호타)라고 한다. 이 둘을 전치사 ‘엘’로 연결시켜 ‘잇샤 엘-악호타’ 라고 하여, “한 여인과 그 여인의 자매간(姉妹間)의 결속(結束)” “자매간(姉妹間)의 유대(紐帶)”처럼, 휘장 폭들을 그렇게 연결한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26장에서 다섯 번이나(26:3,3,5,6,17) 이 표현이 “연결하다”라는 동사를 수식하는, “서로”라는 뜻을 지닌 부사구로 사용된다. 폭과 폭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 자매간의 결속과도 같다는 것을 독자가 은연중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
사해사본 이사야서 두루마리 1QIsab
다른 예를 더 본다. 이것은 폭과 폭을 연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의 첫 단계를 언급한 경우다. 폭과 폭을 갈고리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그 갈고리를 꿸 “고”(loops)를 각 폭에 만들어서, 두 폭의 여러 개 “고”가 “서로” 마주보게 배치할 할 때도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하듯)”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휘장 끝 폭 가에 고 쉰 개를 달며 다른 휘장 끝 폭 가에도 고 쉰 개를 달고
그 고들을 서로 [문자대로는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하듯)”] 마주 보게 하고
(《개정》 출 26:5)
두 휘장을 연결하는 마지막 작업은 연결할 두 폭의 “고”를 서로 마주 보게 하고, 그 “고”에 갈고리를 끼워 두 폭을 하나가 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 26장 6절의 진술이다.
금 갈고리 쉰 개를 만들고 그 갈고리로
휘장을 [서로] 연결하여 한 성막을 이룰지며
(《개정》 출 26:6)
《개역》과 《개정》은 여기에서는 히브리어 ‘잇샤 엘-악호타’를 번역하지 않는다. 《공동번역》(1977)과 《새번역》(1993/2004)은 이것을 “서로”라고 번역한다.
그리고 금으로 갈고리 오십 개를 만들어,
이 두 쪽을 서로 [문자대로는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하듯)”] 맞걸어서
한 성막을 만들어라.
(《공동번역》 출 26:6)
그리고 금으로 갈고리 쉰 개를 만들어야 한다.
이 갈고리로 두 벌 천을 서로 [문자대로는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하듯)”]
이어, 한 성막을 이루게 하여라.
(《새번역》 출 26:6)
성막 널판을 세울 때 널판마다 “촉”(鏃)을 내어 널판들을 연결하였는데, 이때도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잇샤 엘-악호타)라는 표현이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구로 사용되었고, 한국어 번역은 “서로”라고 번역하였다.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문자대로는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하듯)”] 연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개정》 출 26:17)
우리말 “촉”(鏃)은 화살촉이나 연필 촉처럼 긴 물건의 끝에 박힌 뾰족한 물건을 일컫는 말이다. “촉”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드’의 문자대로의 뜻은 “손”이다. 각 널판들을 연결하여 벽을 만들기 위해 각 널판 모서리에는 촉과 촉구멍을 낸다. 각 널판은, 모서리 한쪽에는 볼록한 촉을 위 아래로 하나씩 만들고, 다른 쪽 모서리에는 역시 위 아래로, 볼록한 촉과 같은 위치에, 오목한 촉구멍을 만든다. “각 판에 두 촉씩 내어”는 한 널판 모서리에 세로로 위아래 각각 하나씩 두 개씩 촉을 만든다는 말이다. “서로 연결하게 하되”는 한 널판의 촉을 다른 널판의 촉구멍에 끼워 널판과 널판을 연결한다는 말이다. 히브리어 본문의 문자대로의 뜻은 “한 여인이 그 여인의 자매에게 하듯”이라는 말이다. 곧 “서로 연결하다”라는 뜻이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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