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3)
벽에 소변 보는 자
좀 지저분한 말이 되어 주저스럽지만, 서서 오줌누는 이들 때문에 벽들이 애꿎은 수난을 당한다. 벽에다 대고 함부로 소변을 보는 것은 남자하고 개뿐이다. 아직도 서울의 으슥한 골목길 벽은 남자들의 공중 화장실이 되기 십상이다. 소변금지를 알리는 구호도 갖가지다. 어떤 곳에는 가위를 그려놓고 위협을 주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개 이외는 여기에 소변을 보지 마시오”라고 써서 주정뱅이 오줌싸개들을 개로 깎아 내리기도 한다. 그래도 노상방뇨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또 이런 것은 동서와 고금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히브리어에서 사내를 경멸하여 일컬을 때 “벽에다 대고 오줌 누는 놈”이라고 한다. 즉 “서서 오줌 누는 놈”이란 말이다. ‘남자’나 ‘사내’라고 써도 될 곳에 이런 고약한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런 경우는 대개 그 사내들을 저주하는 경우이다. 씨를 말려 버린다거나 멸족시켜 버릴 사내들을 경멸조로 말할 때 이런 표현을 쓰는데, 구약성서에 모두 여섯 번 나온다(삼상 25:22, 34; 왕상 14:10; 16:11; 21:21; 왕하 9:8), “벽에다 오줌 누는 놈”이란 표현은 실제로 벽을 향해 소변을 보았거나 보고 있는 남자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 오줌 누는 자” 곧 ‘남자’를 일컫는 것이다.
우리말 성서에 이 표현은 ‘남자’(개역, 개역개정), 혹은 ‘사내 녀석’(공동번역)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히브리어 표현의 문자적 의미는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개역성경의 ‘남자’는 너무 완곡하여 경멸하려는 본래의 뜻을 못 살렸다. 공동번역의 ‘사내 녀석’은 그 뜻을 좀 살려 보려 했지만 히브리어 표현 뒤에 있는 해학적인 맛을 전달하기에는 미흡하다. 그렇다고 직역을 해 놓으면 이것이 정말로 벽에다 대고 소변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되어 버려 남자 일반을 일컫는 본래의 뜻을 전달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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