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7)
아름다운 여인의 보기 좋은 이(치아)
아가서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찬양할 때마다 그 여인의 신체 부위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그가 눈여겨 관찰하는 여인의 신체 부위는 머리, 머리채, 눈, 코, 입, 입술, 잇몸, 이, 혀, 목, 젖가슴, 허리, 배꼽, 그곳, 발, 키 등이다.
그는 여인을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고 품에 안고서도 본다. 목을 중심으로 하여 목 위가 11곳이고, 목을 포함하여 목 아래가 6곳이다.
그 남자가 사랑하는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본 곳은 얼굴 쪽에 집중되어 있고, 얼굴에서도 입 주변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 비록 목 아래 부위에 대한 언급이 얼굴만큼은 세분화 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표현의 대담성이 놀랍다. 여인의 신체 각 부위의 아름다움은 은유와 직유를 함께 써 가면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치아)에 대한 묘사가 <개역성경>이든 <공동번역>의 것이든 우리에게는 명확하지 않다.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암양 같구나.”(아가서 4:2)
이것은 <개역개정>의 번역이다. 여인의 이(치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 ‘목욕하고 나오는 털 깎인 암양’이란 은유를 쓰고 있다. 이것은 분명 백옥같이 흰 이와 가지런하고 고르게 생긴 치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일 터인데, 목욕하고 나온 털깎인 암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런 은유는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에 비하면 <공동번역>의 “이는 털을 깎으려고 목욕시킨 양떼 같아라”가 더 그럴듯하다. 털을 깎기 전에 목욕을 시켰으니 얼마나 깨끗해졌는가? 깨끗하게 씻겨 진 양털처럼 흰 이다. 팔레스티나에서는 털을 깎기 전에 양들을 목욕시키지 털을 깎은 다음에는 목욕을 시키지 않는다고 하는 주석가들의 견해를 따른다면, 여기서 <개역성경>은 오역을 보이는 반면 <공동번역>은 바른 번역을 보인다.
‘쌍태를 낳은 암양’이란 또 무엇인가? 우리말에도 “쌍태 낳은 호랑이 하루살이 하나 먹은 셈”이라고 하여, 양은 큰 데 먹은 것이 적다는 뜻을 나타내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쌍태라는 말을 보기는 했지만, 희고 고른 여인의 이를 보면서 쌍태를 낳은 암양이 쌍둥이 새끼를 거느리고 있는 것을 연상하다니 아무래도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동번역>의 “새끼 없는 놈 하나 없이 모두 쌍둥이를 거느렸구나” 역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그 여인의 이가 털 깎으려고 목욕하고 나온 양떼가 희고 흠 없는 것처럼, 위 아래 빠진 이 하나 없이 다 고르게 짝이 맞는다는 뜻을 살릴 수 있는 은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민영진/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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