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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짐승을 가리킨 것이 성서 영감설로 오해돼

by 한종호 2015. 6. 7.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8)

 

짐승을 가리킨 것이 성서 영감설로 오해돼

 

 

성서를 번역하다 보면 원문의 대명사를 번역문에서는 실명사로 바꾸어야만 할 때가 더러 있다. 의미전달을 빨리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때로는 엉뚱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예전에 대한성서공회 번역자 모임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번역위원 중의 한 분이 아침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개역’ 성서의 이사야 34장 16절을 명상할 본문으로 내놓았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 분의 말에 따르면, 단순한 독자들이 이 본문을 성서영감설과 관련시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여호와의 책’은 성서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것들’은 성서 안의 말씀들을,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는 하나님 말씀의 완전성을.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는 ‘성서는 성서로 푼다’는 성서해석의 원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는 성서의 말씀은 모두 여호와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란 것이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는 성서의 말씀이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과연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본문 본래의 뜻과는 너무나도 먼 것이기 때문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여호와의 책’이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다. ‘이것들’이란 이사야 34장 7절 이하에서 언급된 당아, 고슴도치, 부엉이, 까마귀, 시랑, 타조, 이리, 수염소, 올빼미, 솔개 등을 가리킨다.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다 그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다.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암수가 다 짝이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모든 짐승들에게 짝이 있도록 명하셨다는 것이다.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는 하나님의 영이 그 짐승들을 다 불러 모았다는 것이다.

 

16절 처음에 나오는 대명사 ‘이것들’을 ‘위에서 말한 짐승들’이란 실명사로 번역하기만 했어도 이런 엉뚱한 오해는 없었을 것이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새번역'과  ‘공동번역 성서’가 이런 오해를 제거해 주는 번역을 하였다.

 

 

“야훼의 기록을 찾아내서 읽어 보아라. 이런 모든 짐승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리라”(공동번역).

 

주님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 짐승들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겠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짐승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친히 입을 열어 그렇게 되라고 명하셨고 주님의 영이 친히 그 짐승들을 모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새번역).

 

민영진/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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