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3)
늦게사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누가복음 5:1-11).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나 뵌 때는 언제였을까?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사도 요한은 백 살이 다 되어서도 ‘그 날, 때는 네 시쯤이었다’(요한복음 l,39)라고 운명의 시각을 기억하고 있지만, 나는….
내가 내 아내 된 저 여자를 처음 보았던 그 때였을까? 교통사고가 나던 그 날이었을까? 친구가 성당에 가자며 데리러 오던 가을 아침이었을까? 어느 봄날 문득 좁다란 뜰에 초목 한 포기가 땅을 뚫고 솟아 있음을 발견했을 때처럼, 은총의 씨앗이 언제부터 내게 숨겨져 있었는지 나는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예수와 첫 번 제자의 만남은 호숫가에서 이루어진다. 갈릴리 호수다. 그곳은 갈릴리인이 살아가고 일하는 삶의 터전이다. 주님은 한길이란 한길은 모두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나시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불려 나온다. 어부 시몬과 동생 안드레는 호수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배를 좀 타자더니 거기서 ‘좋은 말씀’을 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다른 배에 있다가 시몬의 그물질을 도우러 달려왔었다. 무엇에 홀렸는지 모르나 하여간 네 명 모두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따라 나서는 제자들은 부모에게 작별 인사도, 뒷정리도, 어디 가자는 것이냐는 물음마저도 없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 (출처: Skara Kommun (https://www.flickr.com/photos/63794459@N07))
신앙인이 된 우리는 예수라는 분을 만나서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변했는지 되돌아볼 줄 모른다. 인생의 어느 고비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는지 모르나, 누구는 훌쩍 나서고, 누구는 마지못해서, 누구는 버틸 때까지 버티다, 누구는 따귀를 철썩 한 대 얻어맞고서야 따라 나섰을 것이다. 지금이야 어찌하고 있든 간에 적어도 그때 우리는 자기 인생을 다 걸고 따라 나섰다.
후회는 없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서른이 넘어 입교하고서 숨 끊어지는 순간까지 오직 한 가지를 후회하고 주님께 한마디를 중얼거리며 살았다.
Sero te amavi!(당신을 늦게사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성염/전 바티칸 대사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담아, 너는 어디 있느냐? (0) | 2015.01.28 |
---|---|
한국교회의 문둥이들 (0) | 2015.01.21 |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0) | 2015.01.15 |
생각지도 않은 때에 생각지도 않은 얼굴로 (0) | 2015.01.05 |
우물가의 빈 물동이 (0) | 2015.01.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