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오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14)
교회 대형화와 브랜드화의 병리현상들
한국교회 신학적/윤리적 타락의 그야말로 막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교회 성장주의 다시 말해 "대형화"에 따른 현상으로 이해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인식의 확산에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여러 사건사고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목회자 가족을 둘러싼 재정비리, 한국교회 연합 기관 대표회장 선거에서 불거진 금권선거 논란, 담임목사직 세습, 목회자에 의한 성범죄, 박사학위 논문 표절 문제, 정치적 이념적 편향의 극단적 표출 등 끊이지 않고 터지는 문제의 중심에 대형교회들이 자리 잡고 있다. 교회만 성장시키면 교리적 타락이든, 윤리적 부패든 모두 용서되고 용납되는 세속화가 횡횡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신학적 타락과 윤리적 부패는 목회자 개인의 영성과 도덕성과 관계없다. 교회 신자 수가 일정 숫자 이상 넘어가면 어느 교회에서나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으로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좋든 나쁘든 대형교회들은 또 다시 초대형교회를 향해 지속적인 성장 경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형교회는 교회 개척/분립 등을 할 때 자신들의 교회 명칭을 붙여 지교회화 하며 그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은 대형교회의 폐해를 지적하며 교회갱신과 제자훈련을 기치로 내세우며 성장한 소위 개혁적인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들도 자신들의 건강한 교회 이미지나 목회방법론을 브랜드화해 지교회, 네트워크교회, 캠퍼스교회 등의 명칭으로 교회를 프랜차이즈화 하고 있다.
이렇게 전통적인 대형교회들과 개혁적인 브랜드교회가 자신들만을 위한 교회 생태계를 형성해 가는 동안 한국교회에는 다음과 같은 병리현상들이 가시화 되었다.
첫째, 동네 작은교회들의 몰락이다. 대형교회는 버스 운행이나 대규모 초청행사 등의 물량공세와 각종 종교 편의 시설 서비스 등을 내세워 동네 작은 교회 신자를 수평이동해가는 파렴치한 일을 서슴치 않고 있다. 또 스타목사나 개혁적 이미지로 성장한 소위 교회들의 브랜드화는 지역교회를 프랜차이즈화 하고 있어 또 다른 위협이 되고 있다.
둘째, 교회 공교회성을 위협하고 있다. 대형교회의 출현은 개교회와 목회자의 영향력의 지나친 확대로 노회(지방회)/총회 등으로 구성된 교회의 공교회성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노회(지방회)/총회를 장악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영향력은 암묵적 카르텔을 형성해 대형교회와 그 목회자의 교리적/윤리적 타락을 징계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대형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치리권의 부재는 작은 교회와 목회자들로 하여금 대형교회와 목회자와 분파를 형성토록하고 이런 분파를 통해 작은 교회와 목회자들도 치리할 수 없는 부패의 고리는 견고하고 넓어졌다.
셋째, 신자중심의 교회됨을 상실시키고 있다. 1517년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시작된 개신교의 정신은 “오직성경”, “만인제사장”, “개교회 우선성” 등이었다. 이런 정신은 중세 가톨릭의 중앙집권적 사제주의를 배격하고, 세속적 계급주의와 자본주의적 교회 운영을 터부시 했다. 그래서 목사만이 성직자가 아니라 모든 신자가 성직자이며, 각각의 직분을 은사적 직제로 복음적 분업을 존중하였다. 그런데 대형교회와 소위 브랜드교회 현상은 개교회적 신자중심의 교회됨을 상실시키고 있다.
넷째, 소위 “가나안” 신자 양산을 가속화 하고 있다. 예수를 믿지만 교회를 안 나가는 신자를 “가나안 성도”라고 부른다. 교회를 안 나가는데 어떻게 신자인가? 의아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안 나간 것이 아니라 교회를 출석하다가 목회자나 교회에 실망하거나 신앙적으로 방황하면서 안 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 대형화는 신학적/목회적 타락과 부패를 방치해 이에 상처받고 실망한 신자들을 가나안 성도로 내몰고 있다.
다섯째, 소위 “익명화된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들은 교회에 출석하지만 교회 공동체 일원으로서 참여하지 않고 그저 예배만 드리거나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주변을 맴도는 자들이다. 공동체적 관계를 갖는 다는 것이 불편하고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성격적으로 누군가와 어울리며 교제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럴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교회는 공동체이고 가족이다. 익명화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적절치 않다. 교회 대형화는 익명화된 그리스도인이 양산되고 방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익명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속시켜 습관화 시키고 있다.
여섯째, 신자들의 일상의 제자도를 방해하고 있다. 신자는 교회에서 어떤 신자인가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교회에서의 예배, 교제, 교육 등은 교회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들이 일상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의 제자로 살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교회 대형화는 신자들의 모든 달란트와 은사를 또 시간과 물질을 오직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에 동원되도록 부추긴다. 교회 중심의 삶은 오히려 신자 개인의 일상의 관계와 삶을 망가트리기도 한다.
일곱째, 교회의 공공성을 방해한다. 성공회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은 “교회는 회비를 내어 자기 회원들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라고 했다. 교회가 단지 교인들과 자기 교회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또 우리시대 고난 받는 이웃들과 정치사회적 불의와 맞서 사랑과 평화를 행하고,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대형교회는 큰 건물을 유지하고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는 프로그램 등으로 인해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중심으로 운영된다. 세상 가운데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관계 가운데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는 참여하지만, 정작 가난으로 내몰리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개선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지역사회와 시대적으로 교회가 공적으로 감당해야할 공공 사역을 외면한다. 심지어 교회가 세상 가운데 대항적 공동체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맘몬과 불의를 오히려 인정하고 강화시키는 역기능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교회 대형화와 브랜드화는 교회의 교회됨을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공동체성, 일상의 제자도, 공공성, 공교회성 회복을 위해 건강한 작은 교회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진오/더함공동체교회 목사, 교회2.0목회자운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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