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2)
마음 가죽을 베라
“유다인(人)과 예루살렘 거민(居民)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割禮)를 행(行)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屬)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行惡)을 인(因)하여 나의 분노(忿怒)가 불같이 발(發)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者)가 없으리라”(예레미야 4:4).
몸에 지닌 흔적보다 더 좋은 표지가 어디 있을까? 누군가가 하는 백 마디 말보다도 그의 몸에 남은 흔적은 그가 누구인지를 더 분명하게 말해준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볍씨를 넣는 바쁜 철에 마을 이장인 병철 씨가 원주시청을 다녀왔다. 병철 씨가 논을 샀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묻는다는 것이었다. 바쁜 철에 사람을 오라 가라 한다며 툴툴거리고 나간 병철 씨가 의외로 금방 돌아왔다.
웬일이냐 물었더니, 그 사람들 참 싱거운 사람들이라고 퉁명스레 쏘아붙인다. 시청을 찾아갔더니 담당자가 병철 씨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선 됐으니 그냥 가라 했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그냥 가라 했다니 병철 씨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병철 씨 손이야 말로 땅을 일궈온 손이다. 대지에서 솟아나온, 흙보다 더 흙 같은 손이다. 굴참나무 껍질처럼 깊게 패이고 갈라진 틈을 따라 흙물 풀물이 뱄다. 화장품을 바르며 가꾸는 손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혹시 부당한 투기 아닐까 부르긴 불렀지만 병철 씨 손을 보니 그럴 리는 만무(萬無), 묻지 않아도 충분했던 것이다.
병철 씨는 바쁜 시간을 뺏긴 일을 두고 여전히 툴툴대며 일을 이어갔지만 나는 반가웠다. 공무원 중에도 그렇게 눈 밝은 이가 있다니, 고맙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했던 것 중의 하나가 할례였다. 태어난 지 팔일 만에 사내아이의 포피를 베어냄으로써 할례를 행했다.
안식일이 시간 속에 새긴 거룩함의 표지였다면 할례는 몸에 새긴 표지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신분증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몸에 표지를 지니고 살았으니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하고 뿌듯한 표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너희 마음의 포피를 잘라 내어라.”(새번역)
“마음에 수술을 받아라.”(공동번역)
“너희 마음의 포피를 벗겨 내어라”(성경)
몸의 한 부분을 베어낸 이들에게, 그것으로 만족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음 가죽을 베라 하신다. 몸에 새긴 표지가 전부가 아니라 하신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하신다.
몸에 표지를 새겼다는 이유로 악을 행하면 나의 분노가 너희를 불사를 것이라 하신다. 몸에 표지를 새기고도 얼마든지 악을 행할 수 있음을 지적하신다.
몸에 새긴 표지는 우리들에게도 얼마든지 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 교회에 다닌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는 것, 믿은 지가 몇 십 년 됐다는 것, 직분이 뭐라는 것,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의 신앙을 보증해주는 표지는 그 어떤 것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의 표지다.
악행을 그치는 것, 악행의 근원인 마음속 더러움을 베어내는 것, 그렇게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다.
‘베어내는 것’은 ‘지우는 것’과는 달라 아픔을 동반한다. 출혈의 고통을 지불해야 한다.
몸에 지닌 표지는 농사꾼의 거친 손으로 족하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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