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0)
뻔뻔함을 지워라
- 수욕에 덮이울 것이니 -
“소리가 자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子孫)의 애곡(哀哭)하며 간구(懇求)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며 자기(自己)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배역(背逆)한 자식(子息)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背逆)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主)께 왔사오니 주(主)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작은 산(山)들과 큰 산(山)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虛事)라 이스라엘의 구원(救援)은 진실(眞實)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의 어렸을 때로부터 우리 열조(列祖)의 산업(産業)인 양(羊)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우리는 수치(羞恥) 중(中)에 눕겠고 우리는 수욕(羞辱)에 덮이울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열조(列祖)가 어렸을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犯罪)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聽從)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예레미야 3:21-25).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 어서 되찾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이 없으면 우리들의 신앙과 삶이 위선이 되고 마는, 그것을 되찾지 않으면 우리가 자랑하는 것들이 결국은 껍데기가 되고 마는, 그것은 무엇일까?
하도 잃어버린 것이 많아 되찾아야 할 것의 순서를 정하기가 난망하지만, 그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염치’ 아닐까? 사전을 찾아보니 ‘염치’(廉恥)를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 ‘얌체’라는 말이 있다. 얌체란 ‘얌치가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얌체’와 ‘얌치’는 모두 ‘염치’(廉恥)에서 온 말들이다. 염치가 없다보면 자기의 이익 이외의 것을 무시하는 얌체의 삶을 살게 된다.
어느 날 소리가 자산(赭山) 위에서 들린다. 자산은 어디고 무슨 소리가 들린 것일까? ‘자산’이란 붉은 흙이 드러난, 벌거벗은 산이다. 그곳은 우상을 섬기던 곳이었다. 은밀하게 우상을 섬겨도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우상을 섬기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수치, 그곳이 자산일 것이다.
자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애곡하는 소리요, 간구하는 소리였다. 무슨 까닭일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우상을 섬겼지만 하나님을 등진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슬피 울며 간구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길을 굽게 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길을 굽게 했다는 것은 잘못 살았다는 뜻이다. 행동도 삶의 방식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백성들에게 주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너희들의 배역을 내가 고치겠다고 하신다. ‘배역’(背逆), 등 돌리고 거슬렀던 것을 고치시겠다고 한다.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주님께 돌아온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우리가 주께 왔습니다”이다. 그 단순한 고백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 떠나본 이들은 안다. 내가 지금 주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주님께 돌아온 그들은 주님을 떠나 살던 때의 허망한 실패를 말한다. 부끄러운 것이 우리의 양떼와 소떼와 아들딸들을 삼켰다 한다. 하나님을 떠난 삶의 쓸모없음을 아프게 인정한다.
허황된 축복을 쫓아 바알을 따랐지만, 결국 바알은 준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좋은 것을 얻으려 했지만, 결국은 가장 귀한 것들까지 빼앗겼다. 아들과 딸까지도 제물로 바쳐야 했으니 말이다.
지난날의 시간이 너무도 부끄러운 그들은 수치와 수욕을 감수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수욕에 덮이울 것이니”(개역개정).
“이제 우리는 수치로 요를 깔고, 부끄러움을 이불로 덮겠습니다”(새번역).
“이제 다같이 부끄러운 몸, 엎드리자. 창피한 줄 알아 얼굴을 가리우자”(공동번역).
“수치 가운데 드러눕고 부끄러움이 우리를 덮게 하자”(성경).
주님께로 돌아온 백성들이 비로소 되찾는 것이 있다. 바로 ‘염치’다. 회개는 종교적 쇼도 아니고, 간단하고 쉬운 통과의례도 아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뻔뻔함을 지워야 한다.
“저는 더 이상 아들이 아닙니다. 아들의 자격을 잃어버렸으니 품꾼의 하나로 써주소서.”
그 염치를 아버지는 긍휼로 받아주셨다. 내 허물에 대한 아픔과 수치를 스스로 뒤집어쓰는, 수치로 요를 깔고 부끄러움을 이불로 덮을 때, 그런 우리를 주님은 긍휼로 덮으신다. 염치가 없다면 도로 ‘자산’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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