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9)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
“그들이 나무를 향(向)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向)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向)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向)치 아니하다가 환난(患難)을 당(當)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救援)하소서 하리라”(예레미야 2:27).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늘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해바라기가 종일 얼굴을 돌려가며 해를 바라보듯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도 모르게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야말로 오매불망하게 된다. ‘오매불망寤寐不忘’이 ‘잠 깰 오’(寤)에 ‘잠 잘 매’(寐), ‘아닐 불’(不)에 ‘잊을 망’(忘)이 합해진 것이니, 말 그대로 자나 깨나 잊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즐겁고,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시간을 꿈처럼 보내다가 잠시 헤어지면 어서 다시 보고 싶고, 볼 수 없으면 꿈속에서라도 그 얼굴을 보는 것이 사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된 것들만 보인다. 그러기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눈이 먼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이 멀어 뭘 봐도 좋은 것만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 외의 나머지 세상에도 눈이 멀어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방 눈이 멀었으면서도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은 더 잘 보이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 외의 다른 것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사랑일 수 없다. 다른 사람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도 사랑일 수 없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아주 눈길을 빼앗긴 것은 더더욱 사랑이라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출애굽기 33:14) 말씀하실 때, 그 말은 “내 얼굴이 너와 함께 가겠다”는 의미였다.
하나님은 말로만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 얼굴이 함께 하신다. 하물며 하나님이 하나님의 얼굴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등은 돌리고 얼굴은 돌리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니 하나님 대신 하나님 아닌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로 깎아 만든 우상을 두고 너는 나의 아비라 하고, 돌로 새겨 만든 우상을 두고 너는 나의 어미라 한다. 나무도 돌도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 그러나 그들은 나무를 자신의 근본으로 여기고, 돌을 자신의 근원으로 삼는다. 지도자들이 그러했으니 백성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게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얼굴을 등진 채 살던 백성들이 환난을 만나자 주님께 돌아와 도와달라고 한다. 어려움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자 하나님께 얼굴을 돌린다. 평안할 때는 등을 돌리고, 어려울 때만 얼굴을 돌리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별일 없을 때는 등을 돌린 채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만 얼굴을 돌려 하나님을 찾는, 오늘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모든 것이 어색함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그런 우리를 두고 하일이라는 시인은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 말한 것은 아닌지.
하나님이 정말로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은 우리의 등이 아니라 얼굴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등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싶어 하듯이.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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