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3)
태양의 계절, 생명성숙의 기회
여름의 태양이 작열하지 않는다면 생명은 성숙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물론 너무 뜨겁게 대지를 달구어 버린다면 만물이 기진맥진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절묘한 균형을 잡는 일은 그러나 우리에게 속한 능력과 권한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어, 태양의 자비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고대 인류에게 태양은 신적 존재가 되었던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원시적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날씨입니다. 날씨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그 날의 운명을 결정하는 씨앗이기도 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과 해가 쨍쨍 비치는 날에 할 수 있는 일은 달라집니다.
빙하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해도, 추운 동토에서 견뎌낼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막의 한가운데 쾌적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태양은 필요하지만, 그 태양이 너무 잔인하게 굴거나 또는 빛의 은총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쪽도 인간에게는 위기입니다.
해와 불과 지엄한 군주는 고대사회에 모두 동일체였습니다. 태양은 생기의 원천이며, 불을 다루는 능력은 식생활은 당연하고 철기시대의 핵심이었습니다. 군주는 태양으로 상징되는 자연과, 불로 대표되는 인간사의 권능을 모두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제우스가 불의 신이라는 것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으며,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지도자가 태양으로 떠받들려 지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관계를 넘어서서 이에 사랑이라는 차원이 결합하면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집니다.
불같은 사랑, 태양 같은 임, 이 모두는 나에게 생명의 기력을 불어 넣어 주는 존재를 뜻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사랑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고 그 안에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그로써 인간은 격렬한 충격 속에서 크고 깊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역시 태양만 내리 쪼인다면 자연이나 인간이나 모두 힘겨워집니다. 태양은 비와 그늘, 그리고 바람이 동반될 때 비로소 자비로운 축복이 됩니다. 사랑에도 온통 열정을 쏟는 뜨거움만이 아니라, 비와 그늘 그리고 바람 부는 언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랑은 다양한 표정을 갖추게 됩니다.
더운 여름은 당연합니다. 추운 여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태양의 직사광선만이 지배하는 여름이라면 그건 살인적인 계절이 될 뿐입니다. 인생도 그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힘껏 내세우기만 하는 이에게서 우리는 그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훌륭해도 조만간 피곤해질 겁니다.
태양의 계절에 지쳐 있는 존재들에게 쉴 곳과 조용히 성찰할 시간, 그리고 노동의 곤고함에서 자유하게 할 수 있는 그늘 같은 존재, 그래서 그곳에는 생명의 바람과 때로 내리는 빗줄기가 감사한 그런 이를 만나는 기쁨이 있었으면 합니다. 세상은 그저 앞만 보고 질주하고 있기만 해서 말입니다.
김민웅/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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