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25)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지난 여름 독서캠프를 통해 만난 분 중에 나태주 시인이 있습니다. ‘풀꽃’이란 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지요. 시골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처음 뵙는데, 그 분은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한 신문에 쓰고 있는 칼럼을 눈여겨 읽어오고 있다 했는데, 금방 친숙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 중에 최근에 알게 된 시가 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썼다는 시였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아내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뭉뚝뭉뚝 묻어나는데,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글에 화답하여 쓴 아내의 글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남편이 드린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 시인 아내의 절창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부부가 나누는 지극한 사랑이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는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라는 기도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만, 이만한 기도를 물리치시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토록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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