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7)

 

생애 단 한번, 부르고 싶은 노래하나

 

 

매미소리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방불케 합니다. 여름의 절정에 대한 자연의 찬가(讚歌)이기도 합니다. 도시는 이때쯤이면 탈출이 부추겨지는 곳이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와버리고 말았는가는 새삼스럽게 깨우쳐지기 때문입니다.

 

여름은 그래서 탈출이라는 방식으로 귀환을 이루어냅니다. 벗어나면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있던 곳으로 가는 겁니다. 그가 태어난 곳이 도시라도 그건 상관없습니다. 흙과 물과 태양과 별, 그리고 바람과 나무숲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지 않은 이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저 목적지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 보는 일도 잊어버리고,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무언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간도 사라져버린 삶은 회색입니다. 그 삶 속에 담긴 풍경은 지루합니다. 무척이나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여전히 지루합니다.

 

그 까닭은 분명합니다. 그 자신조차 빠져들게 할 수 있는 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매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열정은 기대할 수없습니다. 열정이 식은 자리에서 의지는 피어나지 않습니다. 의지의 줄기가 힘차게 뻗어나가지 않는 땅에서 지속적인 희망의 능력은 자라나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 땅 속에 은거하고 있다가 지상에 나와 더 이상은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절창을 뽑아내는 매미는 사실 우리를 숙연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 소리 하나에 실린 생명의 무게는 만만치 않습니다. 여름 전체를 관통하는 기세는 그저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일깨웁니다.

 

쉽고 빠르게 가는 길을 아는 것은 지혜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길을 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갈 수 없는 길도 있습니다. 차근차근하게 짚어보고 밟아보고 느껴보고 하면서 가야만 제대로 도착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곧 그 자체로서 길입니다.

 

이걸 그저 건너뛰어 가려는 이는 얼핏 종착지점에 도달한 듯이 보이지만, 정작은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이동한 점으로 이어지는 길의 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곳에서 그저 우두커니 있다가 말아버리는 사태에 곧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과 징조의 의미를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어서입니다. 속성의 비극입니다. 잔뜩 쌓아올렸지만, 너무도 급하게 처리해버리는 바람에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끼어들었는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모양새는 탑이지만, 어딘가 슬쩍 건드리면 이내 무너집니다.

 

속성의 자연은 없습니다. 흙과 바람과 물과 빛은 태고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람은 단숨에 시베리아에서 이곳에 오지 않았고, 순식간에 태평양을 돌파해온 것도 아닙니다. 나무숲은 하루사이에 산을 덮은 것이 아닙니다. 산등성이를 넘는 길 또한 갑자기 트인 것도 아닙니다.

 

생애 단 한번, 진정 부르고 싶은 노래하나 쏟아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를 위해 몰두하는 이는 아름답습니다. 태고의 시간과 이역만리의 소문을 태양과 바람 속에서 만나는 여름이 새삼 소중 합니다.

 

김민웅/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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