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9)

 

이가봇의 어머니, 비극의 시대를 통찰하다(2)

 

1. “이가봇의 어머니.” 결코 영화롭지 않은 호칭이다. 이가봇이라는 험악한 이름을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지어주는 어머니 심정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남자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그만큼 모든 것을 망쳐놓았던 그 비극적인 시절로 돌아가 보자. 사무엘상 4장은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로 시작하는데, 그런 다음 사무엘은 7장 3절에서야 다시 등장한다. 그 사이에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다.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2절). 그래서 사무엘은 사람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한다.

 

2. 그렇게 사무엘이 지도자로 등장하기 20년 전 일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엘리에게 꽤 긴 저주를 들려주셨다. 결국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고, 엘리 가문은 몰락해서,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2:36)라고 한단다. 아버지에 이어 두 아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막강한 엘리 집안이 완전히 망해서, 쇠락한 양반처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비굴한 신세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3. 엘리는 그런 이야기를 사무엘로부터도 들었는데,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3:18)고 대답한다. 엘리는 가문의 비극적 몰락을 예감하면서도, 달리 어쩔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두 아들을 통제할 힘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이름만 있을 뿐이지 힘없는 안방 늙은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4. 그러는 동안,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다. 사사 시대에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계속 싸웠는데, 이번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고 사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패전 이유를 찾는데, 그들이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라고 묻는 것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패하게 하셨다, 즉 패전 원인이 신앙적인 차원에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5. 그래서 그들은 다음 전투에서 필승할 수 있는 비책을 강구하는데, 그 비책은 다름 아닌 언약궤를 전장에 가져가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4:3). 그런데 이 구절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그들이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간구하자는 것이 아니고, 언약궤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게 하자는 것이다. 물론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이기 때문에, 언약궤로 하여금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게 하자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신적인 능력을 가진 언약궤를 자기들 의도대로 이용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6. 이스라엘 장로들은 그런 불길한 결정을 내린 다음, 사람들을 실로에 보내서 언약궤를 가져 오게 하는데, 성경기자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4:4)고 한다. 그리고 성경기자는 언약궤를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라고 한다. 결코 인간들이 제 맘대로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언약궤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제사장 자격으로 언약궤를 따라서 전쟁터로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전날에 당한 패전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이스라엘 군인들은 언약궤가 오는 것을 보고 땅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의기양양해진 것이다. 그 외침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너무도 두려워하고 절망해서 공황장애를 겪을 지경이다. 그들은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라고 하면서,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신, 즉 야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언약궤 자체보다 야훼에 더 주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종교적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언약궤라는 신물, 신적인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그 물건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7. 언약궤를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블레셋 사람들은 두려워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기왕 죽을 것 최선을 다해서 싸우다 죽자 라는 결연한 의지로 이스라엘 군사들을 대했기 때문에, 죽기를 무릅쓰고 달려드는 그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삼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뿐이 아니다. 성경기자는 전투 결과를 이렇게 요약한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4:11).

 

8. 이렇게 해서 엘리 가문에 내린 저주가 시작되었다. 어느 베냐민 사람이 실로로 달려가서 그 참상을 엘리에게 전한다. 성경기자는 그때에 눈이 어두워서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4:13)고 묘사하는데, 전투 결과에 대해 자초지종을 들은 엘리는 충격을 받아 의자에서 뒤로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성경기자는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고 주석을 단다.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노사사가 비보를 전해 듣고 무력하고 비극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9.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엘리의 며느리, 즉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난다. 그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서 몸에 이상이 생겼는데, 그로 인해 죽어가면서도 간신히 아이를 출산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들을 낳았다고 해도 그는 거기에 대해서 대답도 하지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았단다. 그가 한 일은 아이 이름을 이가봇으로 지은 것이었다. 이가봇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의미를 갖는다. 성경기자는 그가 아들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은 까닭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21-22절). 이가봇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남자들의 무능력, 남자들의 비극적 죽음, 그리고 남겨진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의 무한한 아픔을 상징한다.

 

10. 비느하스의 아내, 이가봇의 어머니는 이스라엘의 패배, 남편의 죽음,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비보를 듣고 충격을 받아서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성경기자는 이가봇의 어머니가 남편과 시아버지의 죽음보다 궤를 빼앗긴 것에 더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아들 이름을 이가봇으로 지은 것으로 기록한다. 이가봇의 어머니는 그 당시 누구보다 시대적 상황을 신앙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아이에게 냉정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아이에 대한 모정이 그만큼 강했다는 것이고, 그 아들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다는 것은 그 아이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아린 마음으로 내다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시대. 그 비극적인 시대를 가장 비극적으로 살았던 비극적인 여인이 바로 비느하스의 아내이며 이가봇의 어머니였다. 너무도 짧고 애절한 모정의 시간이었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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